“돌이켜보면 좋았던 순간보다 힘들고 가슴 아팠던 기억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과제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왔죠.”
이정순(80) 여사는 정읍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삼촌들과 함께 양조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부농의 딸이었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굶주리는 이가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부모님의 든든한 그늘 아래 큰 결핍은 없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대가족이 살던 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거나 식사를 가지는 일이 많았다. 덕분에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소녀에게 떠들썩한 분위기는 가끔 부담으로 다가왔다. 정적인 성향의 이 여사의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였다. 많은 글 중에서도 특히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때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펜만 잡으면 하고 싶은 말이 깨진 둑에서 물이 넘치는 것 마냥 쏟아졌어요. 별거 아닌 일도 재밌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죠.”
편지에는 일상의 이야기가 담기기도 했지만, 이루고 싶던 꿈에 대한 생각도 적혀 있었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 여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렇기에 24살이 되던 해는 이 여사에게 남다른 한 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임용고시에 붙어 그토록 바라던 초등교사가 된 해였으며, 중매를 통해 지금의 남편과 만난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이 여사는 결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남편의 가족 구성원을 언급했다. 남편의 시누이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기에, 집에는 시부모님과 시동생뿐이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비록 중매로 만난 남자였지만, 마음이 잘 맞았고 원하던 직업도 얻던 시기였기에 결혼 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비록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여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어지럼증과 소화불량을 비롯한 여러 증세가 이어지며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약을 잘못 복용해서 생긴 일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했을 뿐,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도 눈의 따가워서 장시간 눈을 뜰 수 없는 등의 후유증이 남았고, 결국 직장 생활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교단에 선지 불과 2년 남짓한 시기였다.
“참 허망했죠. 그토록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건강 때문에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학교를 떠난 뒤, 이 여사는 토목기사로 일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그의 발걸음을 따라 전국 곳곳을 옮겨 다녔다. 서울과 철원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전전해야 했기에 이삿짐을 싸고 푼 적은 일일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 시절은 단순한 이동의 연속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새로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도 있었으니까.
물론 어려운 시기도 소중한 순간 못지않게 자주 찾아왔다. 남편의 사업 실패나 가까웠던 지인의 죽음과 같은 인생에 풍파가 찾아올 때마다 이 여사는 사람들, 특히 두 아들을 떠올리며 삶을 견뎌나갔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이 여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큰 아들은 경찰대를 졸업해서 경찰로 지내고 있고, 둘째 아들은 전기과를 나와서 자영업을 하고 있어요. 부자는 아니지만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참 기특하죠.”
종종 방문하는 자녀들과 손주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 여사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순간이다.
이 여사의 요즘 가장 큰 걱정은 남편의 건강이다. 기운이 넘치던 남편은 20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기 시작했다.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가벼운 치매 증상까지 나타나, 꾸준한 돌봄과 관리가 필요하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남편을 돌보는데 써야 하기에, 개인의 삶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부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책임을 지팡이 삼아 삶을 이겨나간다고 한다.
“수십 년을 함께한 사람이잖아요. 나 없으면 누가 돌봐요. 그래도 용변은 알아서 보니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이 여사는 힘든 순간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로 어린 시절 즐겼던 ‘글쓰기’를 꼽았다. 10년 전 장성에 정착한 뒤에는 장성군립도서관에서 열리는 문예창작반에 참여하며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삶의 궤적과 후회, 아쉬움과 기쁨 등을 재료 삼아서. 지난 5월에는 그동안 모은 시를 모아 <내 일기장 속의 비밀>이라는 시집도 출간했다. 남편을 보살피느라 배움과 창작이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지만, 잠시 멈췄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써 내려간 시집이기에, 출간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시집을 소개하며, 이 여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글쓰기를 권해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늘 저를 격려해 주며, 글쓰기를 권유해 준 친구가 있어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친구의 응원 덕분에 글을 통해 아픔을 달래는 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오늘따라 그 친구가 참 보고 싶네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 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