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의 화신불, 서옹큰스님을 기리며
참사람의 화신불, 서옹큰스님을 기리며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12.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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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무엇입니까?” “은주발 속에 들어있는 눈(雪)이니라.”
언젠가 서옹큰스님이 선문답(禪問答)을 하는 후학에게 일러준 話頭 중의 하나다. 道의 세계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눈(雪)의 세상인 것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산이거나 강이거나 똑같이 내린다. 큰스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평등심을 알려주는 법문임에 틀림없다.
하늘도 서옹큰스님의 떠남을 슬퍼하는 것일까? 영결식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눈은 하염없이 펑펑 쏟아졌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던 눈은 영결식이 시작되자 잠시 멈추었고, 다비장으로 가는 동안 내리던 눈이 다비가 시작되자 또다시 멈추었다.

서옹큰스님은 스스로 이 땅을 떠날 때의 모습을 천안통(天眼通)으로 보신 것일까? 그렇게 번뇌의 땅을 은세계로 가득 채우는 법력을 우리에게 보이려 하신 것일까? 서옹큰스님은 육신의 몸이 우리 곁에 있는 동안 많은 화두와 참사람 법문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려 하였고, 이 땅을 떠나면서도 모든 세상에 차별 없는 눈을 내려 분별심을 여의도록했다.

서옹큰스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세계는 물질문명의 발전 속에 많은 편리함을 얻었지만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다보니 자연이 병들어가고 결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서양의 문명을 대립구조 속에서 승패의 원리가 팽배하여 자연을 부리고, 사람을 부리며, 짐승도 부리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에 끄달려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집착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착과 욕망이 자연인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서옹큰스님의 참사람운동과 조사선(祖師禪)의 핵심은 인간과 자연이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모습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선(禪)은 내가 자연 속에 있고 우주가 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옹큰스님께서는 설선당(說禪堂)에서 늘 참선하라고 말씀하시며 열심히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용돈을 주기도 했지만 참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밥도둑놈이라고 할 정도로 꾸짖으셨다.

우리가 서옹큰스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무엇을 할 것인가? 큰스님이 입적하시기 바로 전에 시자인 호산스님이 “세속나이로 92세 평생을 살면서 인생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등불, 등불”이라고 대답했다. 까닭을 물으니 “등불은 밝았다가 꺼져버리잖아”라며 입적을 앞둔 스님 자신을 비유했다. 또 며칠 후에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부처, 부처”라고 대답했다. 큰스님은 “모든 사람들이 부처 마음을 갖고 있고, 모든 이들이 부처되길 노력하니 나도 부처지”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다 등불이며 부처다. 이는 모든 세상이 눈이 내리면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는 무등(無等)의 세계를 말씀한 것이다. 그러한 세계의 경지를 서옹큰스님은 열반송에서 마지막 법문으로 말씀하셨다.

涅槃訟
雲門日永無人至(운문일영무인지)
猶有殘春半落花(유유잔춘반락화)
一飛白鶴千年宿(일비백학천년숙)
細細松風送紫霞(세세송풍송자하)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한번 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네

우리에게 참사람의 화신불로 기억되는 서옹큰스님 이제 상왕(象王)이 백학(白鶴)을 타고 눈 위를 날아간 것처럼 다시 우리에게 눈을 타고 돌아오시길 합장하며 발원한다.

두백스님(백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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