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되기 싫어!”
“노동자는 되기 싫어!”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11.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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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홍 선생의 교단이야기
11월 19일 전국농민대회를 앞두고 장성농민연대 홍보차량이 학교 앞 도로를 지나면서 내는 확성기 소리가 교실까지 들려왔다. 쉬는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이 무슨 소리냐며 서로에게 묻는다.

서울에서 열리는 농민대회 참가를 알리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더니 한 학생이 자기 아빠께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며 쌀값 보장이 필요하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하자 다른 학생들도 관심을 나타냈다.

시작종이 울려 더 이상 토론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각자 수업 준비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내가 약 5분 동안 침묵을 지키자 “선생님이 왜 그럴까?”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호기심을 보였다.

학급 아이들에게 ‘앞으로 커서 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30명중에서 아무도 손을 든 아이가 없었다.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묻자 “힘드니까”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천대받고 살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어떤 직종의 사람들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공사장 인부, 청소부, 농어업 종사자, 공장 근로자, 운전 기사 등 많이 배우지 못해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며 “노동자는 되기 싫어”라고 하였다.

아이들의 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어떤가?’ 했더니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 철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대학 강사노조, 조종사로 구성된 항공노조 등 여러분이 생각하는 범위보다 훨씬 다양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내 말에 아이들의 눈망울이 달라짐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은 것에서 노동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의식 구조를 갖고 있음을 종종 본다. 또한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노동자가 천대받고 기피해야할 대상임을 주입 받으며 자란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원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야할 세상이다. 그런 학생들이 노동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교육노동자로서 지금까지 잘못 가르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소년이라면 노동자를 학력의 차이쯤으로 판단해서야 되겠으며 직업과는 상관없이 노동의 소중함을 간과하며 자라서야 되겠는가?

경제 사정이 어려운 요즈음 일부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입이나 신문에서 노동자들의 데모 때문에 기업 경영이 힘들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고 호들갑을 떤다. 농민대회가 있는 19일 다음 날의 신문 기사의 머리글자에는 또 어떤 내용이 실릴까?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 제대로 가르치려 노력하련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기업들의 대선 비자금은 혼란의 주범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의 농촌 문제가 농민들이 게으르고 일을 안 해서 발생한 것인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자동차나 핸드폰을 많이 수출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농업을 개방하여 위기를 맞게될 농촌에 대한 보전과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논농사를 짓고 있으며 모심기, 농약하기, 가을걷이 등으로 제법 많은 일을 한다. 작년엔 태풍으로 벼가 쓰러져 일으켜 세우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퇴근 후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들로 나간다. 농사짓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노동의 강도가 셀 수록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서로를 생각하게 만든다.

농업과 가르치는 교육노동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기에 농촌 살리기는 내 가정에서나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쳐야하는 학교에서 모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농사지으시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이들.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어른들. 시골이지만 활기차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학교. 노동자가 되어도 세상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나라.

그런 나라 대한민국에서 신명나게 가르치고 싶다.

황인홍(전교조장성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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