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부. 아일랜드 피크로
제 5부. 아일랜드 피크로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5.01.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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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산록기
I
다음날 오전, 쿰부 빙하를 빠져 나와 아일랜드 피크로 향하는 산록길은 포근한 봄 햇볕이 산과 온 분지를 감싸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계곡너머 동편으로는 타보체(6,637m)를 덮은 눈더미와 가파른 바위 능선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고원의 낮은 풀은 잔잔한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하얀 잔구름은 바람따라 흐른다. 저 앞에는 다시 아마 다블람의 그 아름다운 자태가 능선의 나래를 펴고 가까워 온다. 1,000m 정도 낮아진 고도가 온 종일 그렇게도 몸을 홀가분하게 한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마을인 딩보체(4,412m) 도착은 늦은 점심 시간. 어느 아는 집 아궁이에 찐 감자로 요기를 하고 나니, 남길은 바로 윗마을에 자기 어머니가 여동생들과 산다며 지나는 길에 들려봤으면 해 함께 가보았다. 우리를 반갑게 맞은 그 할멈은 방 가운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대들보에 걸어 놓은 마른 야크고기를 내려 썰고 기름으로 볶는다.

셸파마을 금중을 지나오면 그 위부터는 미작 논은 보이지 않고, 손바닥만한 산간 밭에 감자와 수수를 일구는데, 이것이 그들의 주식이다. 채소나 과일도 볼 수 없고, 이름 모를 야생풀을 말려 빻은 것과 폭이 가늘고, 결이 거친 배추 비슷한 것으로 국을 끓여 먹는다. 야크는 한 마리 잡으면 여러 집이 가담해 나눠 갖고, 말린 후 명절이나 손님접대 때만 쓰는 귀한 음식이다. 내 앞에 내놓은 것도 겨우 작은 공기로 하나이다. 이것을 야크젖 버터를 넣은 셸파 차와 함께 든다.

이들 몽고-티베트계 사람에게 홍차는 주식의 일부분이다. 티베트인들의 일상생활모습은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명저, ‘티베트에서의 7년’(한영탁 옮김, 수문출판사, 1989)에 상세히 나온다.

차는 그들 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셸파 차를 하루에도 수십 잔씩 마신다 한다. 평균고도 4,000m의 메마른 공기 속에서 호흡기를 보호하자면 자주 물을 마셔야 하는데, 진하게 끊인 홍차는 체내에서 살균 및 소염 효과가 크다. 별다른 의약품 대신 차가 나날의 생활에서 질병을 예방해 주는 셈이다. 또한 야크젖 버터는 차 속의 강한 타닌 성분을 중화시키고, 단백질과 지방분을 보충해 준다. 차의 중요성이 이렇고 보니, 표준화된 무게에 직사각형으로 압착된 찻잎 덩어리는 20세기 초반까지 수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고원에서 명실공히 화폐로 사용되었다. 물건을 살 때나 여행할 때면, 그 찻잎 덩어리를 자루에 넣어 지고 다니며 그것으로 대금을 지불했다.

떠나기 전, 집 앞으로 모든 식구를 불러내 사진을 찍으려니, 여동생들의 얘들이 소리치며 뛰어나와 주렁주렁 서기 시작하는데 그 수를 셀 수가 없다.
석양에 다다른 츄쿵Chukung(4,730m)에는 통나무집 주막 하나만이 외로이 서 있고, 내 키 만한 건장한 젊은 셸파족 여자가 혼자 관리하고 있다. 루크라를 떠난 후 들리는 주막마다 보면 주모들은 어디나 그렇게도 부지런하고, 생활에 적극적일 수가 없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삶에 무관심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자신의 혼신 전부를 바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어느 작은 삶의 조각일 망정 소홀히 해 버리거나 놓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임에 틀림없다. 나는 왜 내 삶을 주인답게 이끌지 못하고, 그 것, 바로 자신의 삶이라는 것’에 질질 끌려만 다녀야 하나?” 그렇게 자주 자탄하던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모습들이다. 그런 실망과 회의감에 젖을 때면,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시 구절이 희미한 기억 속에 생각나기도 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마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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