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잔물결 치는 ‘어랑(漁浪)’
물고기 잔물결 치는 ‘어랑(漁浪)’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5.01.2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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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서면 삼계리 어랑마을



























어랑(漁浪)마을(이장 김병열·58 )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진주김씨 효열비각 designtimesp=31785>과 <어은김선생유허비 designtimesp=31786>, <어랑사 designtimesp=31787>다.

“진주김씨가 자작일촌을 이룬 마을이제…” 진주김씨 집성촌이다보니 주민들의 진주김씨 문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랑은 삼서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4km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삼서면과 삼계면의 경계를 이루는 태청산의 동남지맥인 계량산(190m)과 망월산 서쪽기슭에 자리잡은 남향 마을이며, ‘문안등’, ‘서당거리’, ‘우데미’, ‘아래데미’ 등 4개의 뜸으로 이루어졌다.

마을 남쪽에 삼봉산이 솟아 있고 망월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어랑 안골들을 지나 남쪽 수해리로 흐르며, 북쪽 망월산을 넘으면 삼계면 신기리, 동쪽 만선봉을 넘으면 삼계면 월연리가 인접하고, 냇 건너 동남쪽에 초정마을, 서남쪽에 월계리가 인접해 있다.

어랑은 진주김씨가 500여년 전부터 자작일촌 해온 마을이다. 진주김씨 善貞(1446~?)이 무오사화(1498, 연산군4년)에 연루되어 피난을 와 이곳에 입향하여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었고 현재 16세손이 살고 있다. 마을에 타 성받이는 장흥 임씨 1호 뿐이다.

진주김씨가 입향하기 전 옛날, 여산송씨와 전의이씨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손들이 하나도 살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수가 없다. 망월산에 전의이씨의 선산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랑마을의 형국은 배형국이라 한다. 마을에 뜸이 많고 집터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마치 물고기가 잔물결을 치며 노는 형이라하여 ‘어랑(漁浪)’이라 했다고 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행주형(行舟形)’으로 배가 떠나면 ‘마을의 재물이 빠져나간다’고 하여 이 마을에서는 가는 배를 잡아두기 위해 매년 보름날 ‘줄장아댕기기’를 하고 제를 지내며 당산에 줄을 감아준다.
“6·25때 제를 안지냈더니 전염병이 돌고 사람들이 죽었어… 다시 제를 지내니 마을이 평온 해졌제” 마을의 원로 김재수(72)씨가 당산나무에 감겨진 줄을 보여주며 말한다.

현재 어랑마을은 16호만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일제 때와 6·25전엔 45호나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뜸 중 ‘철륭테’와 ‘건넌테’가 6·25후 폐촌되었고, 70년대 이농현상으로 호수가 줄었다.

대대로 쌀농사만을 지어온 마을. 곰배미, 띠구리배미, 솔대배미라 부르던 논들은 처수답 이었다. 지금은 장성댐 수로물로 농사를 짓고, 잔디와 고추도 재배한다. 삼서면의 명물인 잔디야 말할 것도 없고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추 또한 질이 최상급이다.

어랑엔 배의 돛을 상징하던 ‘돛대바위’의 전설이 전해지고, 물이 좋았다는 ‘계량산 약수터’, 어느 민가 텃밭가에 연자방아 돌이 아직 남아 있다.

동양화가로서 국민훈장을 받은 김봉열씨가 이 마을 출신이며 장성군청 강당의 병풍을 그린분이다. 교육자로 초등교장을 지낸 김강열씨, 대구대학교 교수로 있는 김재준씨, 내무부장관 표창을 받은 전 이장 이재수씨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어랑사(漁浪祠) designtimesp=31814>

순조 16년(1816) 삼계면 신기리 사선마을에 김무질, 김태, 김약용, 김겸, 김양손을 배향하기 위해 <사선사 designtimesp=31817>를 건립하였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후손들이 고종 25년(1888) 단을 건립하여 단제를 모시었다.

그후 1989년 장성유림, 본손의 발의로 현 위치에 단종 절신인 공안공 만송 김겸(1392~1456) 선생을 주벽으로 하여 선생의 학덕과 절의를 숭모하기 위해 <어랑사 designtimesp=31820>를 창건하였다.

또,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낙향한 어은 김선정, 임진왜란시 창의한 수은 강항(1567~1618), 1636년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을 사수한 계암 김정발(1594~1654), 백헌 김중려(1675~1716)선생을 배향하였다.

주벽인 만송 김겸 선생은 홍문관 응교, 이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1456년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처형 당했으나, 숙종 1년(1675) 복관되고 공안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경내에는 사우인 어랑사와 강당, 외삼문, 내삼문, 고직사, 묘정비 등이 있다.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3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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