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바위’에서 유래한 ‘扶興’
‘부엉바위’에서 유래한 ‘扶興’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4.11.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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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읍 부흥리 부흥·안신흥마을















깊은 산골 오지 마을에 넓은 길이 뚫렸다. 당도 높은 장성사과를 출하하던 수천 평의 사과밭들이 신작 고속도로 부지에 편입되어 깎이고 밀려… 지금 흙먼지 날리는 넓은 길로 변했다.
담양-고창간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인 장성읍 부흥리.

부흥리(이장 박재옥·73)는 장성의 산중 오지마을 중의 하나이며, 부흥마을과 안시냉이(안신흥) 2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북삼면에 속했으나 1914년에 장성읍에 편입되었다.

장성읍소재지에서 북쪽으로 달려 성산교를 지나 호남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통과하면 황룡강이 가로지르고 강 건너 서쪽엔 산을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부엉바위가 눈 앞에 놓인다.

부흥교를 지나 부엉바위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부흥마을이 있고, 이곳에서 700여m를 더 오르면 안시냉이(안신흥)다.

담양-고창간 고속도로가 부흥마을과 안시냉이 사이를 지나며 두 마을을 갈라 놓는다.

부흥(扶興)마을은 부엉바위에서 유래하여 ‘부엉리’ 또는 ‘富興’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먼 옛날은 상고할 수 없으며, 1760년경 김해김씨가 입향한 후 200년 가까이 지난 1900년 이후에야 전주이씨, 나주임씨, 광산김씨, 전주강씨, 탐진최씨 등이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 13호가 살고 있으며 김해김씨가 가장 많다.

안시냉이(안신흥)는 부흥보다 늦게 성촌된 마을이어서 ‘신흥(新興)’이라 했으며 북일면의 신흥과 구별하여 ‘안신흥’또는 ‘안시냉이’라 부른다. 이곳 역시 김해김씨가 먼저 입향했고 가구수가 많으나, 밀양박씨 또한 7대째 살고 있으므로 거의 같은 시기에 입향한 것으로 추측된다. 1860년경 전주이씨가 들어왔고 구한말에 동래정씨를 비롯해 많은 성씨들이 들어와 일제때는 40여호에 이르는 큰 마을이었다.
안시냉이에는 현재 23호가 살고 있으며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이상이다.

마침 야채를 팔러 온 트럭 주변에 몰려든 젊은 아주머니들(?)….
“마을에 젊은 분들이 많네요?”라는 기자의 말 끝에 “무슨 소리? 저 분들 모두 70이 넘으신 분들이여.”라는 주민 김명구(56)씨의 말에 기자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예?…장수마을 인가요?”라는 말로 기자는 실수(?)를 만회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이마을에서 내 나이는 총각이라네.”라는 김씨의 말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산 좋고 공기 맑은 곳이라 나이들어도 모두 젊고 건강하시다”고 김씨가 말한다.

안시냉이는 산골이라 논이 적어 옛부터 쌀농사를 많이 짓지 못했다. 그 흔한 저수지도 없고 장성댐물의 혜택도 못받았다. 시정 앞에 질안배미, 큰배미가 있으나 모두 ‘하늘받이(천수답)’다. “빗물만 받아 농사 지었다”고 한다.

밭농사로 고추, 깨, 콩 등을 가꾸었고, 대규모로 소를 키우고, 산을 개간해 사과밭을 일구었다. 주민 윤영환씨가 부흥리 산 수천평에 사과를 재배해 ‘장성부흥사과’의 위상을 높였으나 밭 대부분이 고속도로 부지에 편입되고 말았다.


<부엉바위와 삼강정려(三綱旌閭) designtimesp=32186>

장성읍 부흥리로 향하는 길목, 부흥교를 지나면 서편에 깍아지른 듯 위용을 자랑하는 부엉바위가 서 있다.
지금은 논이 되어버렸지만, 옛날에는 황룡강이 그 바위 밑으로 흘러 물줄기가 굽이쳐 소(沼)를 이루었다.

임진왜란 때 화차를 제작한 망암 변이중의 종제인 휴암 변윤중은 종형을 도와 화차를 제작할 때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정유재란 때 왜적이 장성에 들어오자 윤중은 집안의 종들과 의병을 모아 왜적과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패하고 많은 의병을 잃자 부엉바위에 올라 투신해 죽었다.

이때 부인 함풍성씨가 ‘여필종부’라 하여 남편을 따라 투신하자 아들 변형윤 또한 부모님을 따라 죽으려 하니, 그의 아내 장성서씨가 “내가 대신 죽을테니 당신은 대(代)를 이으라”며 강물에 몸을 던졌다.

기이하게도 며느리는 하류에 몸을 던졌건만 그 시신이 급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 시어머니의 손을 꼭 움켜잡고 부엉바위 앞을 맴돌고 있었다 한다.

변윤중의 忠과 아내의 烈, 며느리의 孝로서 보기드문 <일문삼절 designtimesp=32200>이었으니, 조정에서는 <삼강정려 designtimesp=32201>를 명하고 고종때 장성읍 장안리에 비와 문을 세웠다.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3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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