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이 지켜주어 편안한 곳
말(馬)이 지켜주어 편안한 곳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12.2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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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서면 석마리 마령마을















진눈개비 햇살아래 간간히 날리는 겨울 들녘. 삼서면의 들녘은 아직 황금빛이다. 바로 삼서의 명물 잔디밭이다. 지난 여름 푸르던 잔디밭이 이젠 누런 황금빛으로 변해 겨울을 난다.
삼서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4.5km 떨어진 마령마을은 태산의 남지맥인 낮은 야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수령 600년이 넘은 귀목나무가 당당하게 서있다. 당산나무이기도 한 이 귀목은 5개의 가지가 뻗어 가지 사이에 평상을 놓고 놀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가지를 벤 사람이 화를 입고 집안이 망했다는 전설도 함께 전하며 주민들은 이 귀목을 마을의 수호신처럼 여긴다.
마령은 안뜸(원마령),은행정, 토수만이, 새터, 초당골 이렇게 5개 뜸으로 이루어졌다. 마을 중앙에 안뜸이 자리잡고 있고 안뜸 북쪽에 은행정, 새터뜸, 안뜸 동쪽에 초당골, 서쪽에 토수만이가 위치한다. 마을 북서쪽 석마제에서 흘러나온 물이 회올고랑과 서쪽 들판을 적시고 이웃 녹서를 거쳐 옥산 앞에서 평림천과 합류한다.
마령은 원래 영광군 삼남면지역으로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 designtimesp=1862>에 馬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designtimesp=1863>에는 馬令으로 나온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5개의 뜸 중에서 안뜸과 은행정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 후로 토수만이와 새터뜸이 성촌되었고, 초당골에는 일제초기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마령마을의 뒤산 형국이 말을 닮은 형국이고 뒷산에 말바위, 가마바위, 함바위가 있어 말이 방울을 울리면서 혼인집을 찾아가는 형국이라서 마을 이름을 마령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14일에 뒷산에 있는 말바위에서 ‘말바우제’를 올린다.
현재 마을에서 가장 오래살고 있는 교하노씨와 밀양박씨는 400여년전에 입향했으며 그 후 경주김씨와 청송심씨, 금성나씨, 등이 들어왔으며 1900년대 초에 하동정씨, 함평이씨 등이 이주해 왔다.
일제때는 70여호가 살았으며 6.25때에는 인명과 가옥 피해가 거의 없었고 70년대 초반까지 68호를 이루었는데 이농현상으로 현재 35호에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마령마을의 대부분의 농가들은 잔디농사를 지으며 딸기, 고추 등 하우스농가가 3~4호 된다.
마령마을 박문균(48) 이장의 말에 따르면 나금주씨가 70년대말 잔디를 심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삼서면에서 잔디농사를 처음 시작한 곳이 이곳 마령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이 광주시 광산구에 가까워 생활권은 장성보다도 광주권이며 주민들은 광산구 송정장을 주로 이용한다.
“마을이 양지 바르고 주민들은 서로 화합 잘하며 살기 좋은 곳”이라는 박문균 이장의 설명이다.
마을의 초당골이라는 뜸에는 옛날 추산 김열 선생이 강학을 했던 초당이 있었다고 한다. 추산 김열 선생은 한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대일 항전을 펼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후 마을에 초당을 짓고 학문에 종사하였으며 문하생이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영정이 마을의 유물로 남아있다.
마령마을 출신 중 역대 삼서면 면장을 지낸 인물이 5명이나 된다는 것도 자랑할 만하다. 김갑청씨, 나영국씨, 정찬길씨, 김원균씨, 나문식씨 등이 모두 삼서면장을 역임한 마령마을 사람들이다.
마을 진입로의 잔디밭가에 놓여있는 선돌과 왼편으로 3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진 선돌은 마령마을의 수구맥이로 세웠다. 한때 선돌을 땅에 묻어버리자 마을의 재앙이 잇따라 다시 세웠다고 한다. 박문규 이장은 “마을의 어른들이 선돌을 소중히 여겨 감히 손을 대지 못합니다. ”라고 한다.
마령마을 뒷산 나즈막한 등성이(말바우등) 오솔길 가에 조랑말 형상의 말바위와 말머리 앞쪽에 있는 가마바위 뒤쪽에 있는 함바위는 이마을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마을의 수호신 격인 유물이다.
한때 말머리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가 마을에 재앙이 있어 다시 돌려 놓았다고 한다.
마을의 원로 김채봉(69)씨는 “말바우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고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중요한 행사”라고 설명한다.


<마령마을의 말바우제 designtimesp=1880>

마령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오후 4시경 당산에 삼실과와 술 등 간단한 제물을 올린 후 말바우로 가서 풍물을 치면서 성대히 제를 올리는 데 이를 따로 ‘말바우제(馬岩祭)’라 부른다. “
말바우제는 마을의 성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전해오지만 정확히 상고해볼 수는 없다. 옛날에는 굿만 치다가 6.25 후부터는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14일 오전 ‘말바우계’를 치루면서 연장자를 중심으로 덕망있고 정결한 사람 가운데서 현관 3명, 축관 1명을 선정하여 제를 모셔 왔는데, 요즈음에는 인구 수가 줄어들어 헌관 1명, 축관 1명만 선정한다.
13일 아침 당산 주변과 말바우에서 마을 입구쪽 10여m까지 길 양쪽에 황토를 몇 줌씩 깐다. 유사는 시장에 가서 재물을 구입하는데 값을 깍지 않고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구입해야 한다.
14일 조전부터 재물을 장만하기 시작한다. 제물은 백설기, 팥시루떡, 돼지머리, 명태포, 제육, 나물, 과실, 등이다. 떡시루는 유사 또는 주민 중에서 2~3개 준비하는데, 떡시루를 해오면 그 해에 집안 운이 좋다고 하여 부정없는 사람 중에서 자원하여 해온다.
해가 질 무렵에 말바우로 가서 제를 올리는데 제의 순서는 진설-헌작-굿(삼채굿)-독축-도지-소지-재배-음복의 순이다. 제사가 끝나면 굿을 치고 내려와 샘굿을 치고, 가가호호 다니면서 지신밝기를 하였는데 요즈음엔 원하는 집만 굿을 친다. 굿이 다 끝나면 유사집에 모여 결산을 한다.
1952년에 석마리의 마령, 전도, 석령, 녹서, 옥산 5개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말바우계를 조직하고 제사를 모셔오다가, 1957년부터는 마령마을 주민들만 계에 참여하여 제를 모시고 있다.


<마령마을의 재미있는 지명들 designtimesp=1892>

안 뜸 : 마을 안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안뜸이라
한다.
은 행 정 :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전한다.
토수만이 : 토기가 달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새 터 뜸 : 새로 터를 잡아 성촌하였기 때문에 새터라
한다.
초 당 골 : 추산 김열 선생이 이곳에 초당을 짓고 강학
하였다고 한다.
딸 메 : 마을 북서쪽에 있는 산. 밭으로 개간하였다.
쇠 목 골 : 새터뜸 옆 골짜기, 목동이 소의 깔(꼴)을 벤
다는 곳으로 풀이 좋다고 한다.
유 출 메 : 새터뜸 앞에 있는 개간지.
신 사 태 : 은행정 뒤에 있는 전답.
시 갱 이 : 은행정 뒤편 골짜기. 좌우에 인적이 없는 골
짜기여서 시간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파도 일
을 한다고 한다.
큰 벌 등 : 은행정 뒤의 경주김씨 묘역. 벌안 면적이 2
천평이라고 한다.
꿀등너매 : 딸메 쪽에 있는 고개로 넘으면 보강이다. 고
개가 낮기 때문에 숨 한번 꿀꺽 쉬고 넘으면
된다고 한다.
솔 개 등 : 은행정 뒤쪽에 있는 언덕. 말바우가 있다.
솔 청 골 : 삼서남국민학교 옆에 있는 골짜기. 소나무가
많다.
바 랭 이 : 꿀등너매 위에 있는 논. 매화낙지가 있다고
전한다.
삽 인 산 : 안뜸 뒷산, 왕이 옥쇄를 찍는 형국 또는 도
장형국이라 한다.
서 당 골 : 은행정 앞,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꿩 밖 에 : 안듬 옆, 현 삼서남국민학교 자리로 옛날에
공터였다고 한다.
수륵생이 : 안뜸 우측.
선 독 골 : 마을 앞. 선돌이 있다.
황새암등 : 토수만이 앞. 옛날에 황새암이라는 큰 샘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1931>
<참고문헌:장성군사, 장성군마을사, 장성군의문화유적 designtimesp=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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