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독 주문한 적이 없는 장성군민신문이 정확한 우리 집 주소와 분명한 내 이름으로 일주일 간격으로 꼬박꼬박 배달되었던 것은 일 년 전 즈음이다. ‘이 신문은 이종수 회장님이 후원해주셨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종수 이름은 기억에는 없었다. 이름으로 보아 남자임엔 틀림없겠고, 어디에 살고? 장성에 사니까 장성 군민신문을 구독했을 터, 그럼 내 주소는 어떻게 아시고? 가끔 한 번씩 장성21세기랑 문물여장성에 글을 보내면 채택된 글을 읽은 분? 궁금증은 있었지만, 내 필요에 의해 구해진 게 아니었기에 ‘뭐, 내 돈 안 들면 됐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몇 개월 동안 과수원 일도 바쁘고 신문지도 귀한 시골생활에서 택배 보낼 때나 아궁이 불 지필 때 유용하게 사용하다가, 아궁이 불쏘시개로 쓰고 남은 신문지 조각에 실린 내용들을 읽어보았다.
문틈시인이 쓴 「냇가에서....」 아! 이건 태워 없애면 아깝겠네, 따로 빼놨다 다시 읽고, 문예 지면을 먼저 찾았다. 그렇게 시작해 가끔 실린 시에 「나비의 눈」 ...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을 가위로 오려 보관하기까지 했다. 후원해 주신 분의 진가를 깨달은건 6개월이란 긴 날이 흐른 뒤였다. 이제야 돈으로는 매길 수 없는 신문의 가치에 놀라워하며 일년 동안이나 나에게 유익한 선물을 보내주신 이종수 회장님께 감사드리지 못했음을 늦게야 깨닫고, 오랫동안 잘 받아만 봤으니. 이젠 염치가 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년 구독료 60.000원쯤이면,,,,’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송금한 뒤, 장성 군민신문(061ㅡ392ㅡ2041)으로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예쁜 목소리 여자분이 받으면서 ‘감동이네요, 정말 감동’이라며 기분 좋은 칭찬을 하신다.
한참 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5만 명도 채 안 되는 장성군민 10% 즉, 열 사람 중 한 명이 구독한다 쳐도 5,000명 X 5,000원이면 한 달, 2,500만 원 남짓인데 그 돈으로 어떻게 신문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 모자란 샘 실력으론 답이 없고, ‘우선, 지금, 나부터라도’ 문화면에도 많은 할애를 해주는 장성군민신문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문화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일까? 구독 후원을 해주면 교양있는 어른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제2의 이종수 님의 뒤를 이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일면식도 없는 이종수 님을 멋진 신사로 생각 속에 저장하고 그분의 행동을 컨닝해서 누군가에게 일 년 치 신문 구독을 후원해준다면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마운 얼굴, 긴 세월 동안 내 곁 가까이 함께 있어 소중한 길벗 김유순에게 후원해보리라.
함께 문예 창작반에 다니자는 간곡한 내 부탁에 늙어서 숙제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친구, 어느 날 우연히 불쏘시개 하다가 나처럼 번개를 한 번 맞고는 글 읽기 좋아하던 기억을 떠올려서 소녀 때의 감성으로 돌아왔으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