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람
멋있는 사람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4.03.03 17:22
  • 호수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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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금

15층 아파트인 우리 라인에 30세대 주민이 살고 있다. 불과 두서넛 집 빼고는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고 해서 이젠 누가 어느 층에 사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서로 친밀하게 교류는 하지 않지만, 눈인사 정도는 다들 하고 지낸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20여 년을 살아서인지 이 집이 참 편하고 좋다. 이 아파트에서 아들, 딸 모두 출가시키고 지금은 우리 부부만 오붓하게 살고 있다. 나이 든 우리 부부가 살기에는 참으로 맞춤이다. 간혹가다 손녀 애들이 할머니 집은 왜 이렇게 낡았어?하고 물어본다. 그것만 빼면 다 좋다.

이렇듯 한 곳에서 20여 년을 살다 보니 그동안 많은 경비원 아저씨들과 청소하시는 주머니들도 많이 거쳐 가셨다.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열심히 잘해 주셨지만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청소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손윗사람이었다. 131일까지 근무하셨고 그만둔 지 불과 25 전이다. 다른 분들도 모두 묵묵히 제 할 일을 하였지만, 이분은 특별했다. 정말 열심이셨다. 일하는 걸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너무 진지하게 열심히 하시길래 여사님, 적당히 하세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라고 하니 아니, 무슨 말씀을. 오늘 이걸 해 놓지 으면 내일은 일이 많아져서 더 힘들어요하신다. 나는 속으로 맞아, 러시아의 대문호가 그랬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된다고 참으로 지혜롭고 성실한 분이었다.

나는 밖으로 도는 걸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분과 마주친다. 매번 어디 다녀오냐고 인사를 건네셨고 나는 친구와 점심은 먹고 오는 길인데도 나이 들면 병원 갔다 오는 일 밖에 뭐가 있겠어요? 나도 여사님처럼 건강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싶어요하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면 그분은 맞아요, 건강이 최고지요하면서 웃는다.

그날도 장성도서관 문예 창작반에서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입으로는 잘난 척을 수도 없이 하면서 점심까지 먹고 집 앞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딱 누르려는 순간 계단 위에서 영어 회화를 녹음해 들으면서 따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만가만 계단을 따라 라가 보니 청소하시는 그분이 위층에서부터 계단을 빗자루로 쓸어내려 오면서 혼자 그렇게 공부하면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놀랍다기보다는 경이롭게 느껴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그분 주위에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루종일 잘난 척하고 다녔는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며칠 후 기회가 돼서 여쭤봤더니 어렸을 때 가난해서 공부 못한 게 너무 한이 돼서 낮에는 일을 하며 아야 하니 독학으로 중등, 고등 검정고시로 자격증을 획득하고 올해는 수능 공부를 해서 내년에는 꼭 대학을 가고 싶다 하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장하세요, 참 장하세요하면서 두 손을 덥석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근무 마지막 날도 계단 난간을 수세미로 쓱쓱 힘을 다해 닦고 있었다. 아니, 오늘까지만 하신다면서 뭘 그렇게까지 해요하니 뒷모습이 예뻐야죠하신다. 너무 멋지고 당당해 보였다.

매번 내가 작아진다. 세상에는 멋있는 척, 잘난 척, 예쁜 척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러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당신이 세워 놓은 그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그분 청소 주머니. 이런 분이 진정 멋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응원해주고 싶다. 당신은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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