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만 같아라
설 만 같아라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4.01.16 12:10
  • 호수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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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문예창작반 수강생. 수필가 류진창

설은 우리 민족 고유의 대명절이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 날이 곧 설이다. 만 가지 일들이 한해를 마감하여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과 보낸 종착점을 가르는 날이 섣달그믐과 설이 있는 정월 초하루가 된다. 우리는 모두 설을 보내야 만이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시점이 되는 날이니, 역사적으로 기념비적인 날이 설이다. 지난해의 서운했던 일들이나 성나고 슬프게 했던 액운들은 보내는 저 해에 실려버리고 상서로운 기운의 바램만을 담아 새해를 맞이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날이 설이다. 14억 인구가 사는 이웃 중국은 제1의 명절이 춘절(春節)이라 하는 설이다. 춘절 기간 유동인구가 무려 25억 명에 이른다니, 온 나라가 보름 동안 축제가 이어지는 것이다.

설날 아침이면 자손들은 저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조상님 영전에 술을 따르며 세배를 올리는 예절이 우리의 전통 풍속이다. 일반 기제사와는 다르게 멥쌀로 빚은 하얀 가래떡을 곱게 썰어 떡국을 지어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성묘를 다녀온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윷놀이 상륙 치기 화투 놀이로 밤새도록 가족사랑을 나누는 일도 설이 갖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린이들은 손꼽아 기다려온 설을 맞이하기 위하여 옷장 속에 걸어둔 색동저고리 바지를 몇 번이고 입어보기를 하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설이 다가온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웃어른께 큰 절로 세배를 올리며 만수무강을 빌려 드린다. 어른은 년만(年滿)한 딸에게 올해는 꼭 백마 탄 총각이 나타나 시집가는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베푼다.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에게는 조상님의 은덕에 힘입어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꼭 합격의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기원(祈願)을 건네준다. 새해 세배 자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호기심 가득한 세뱃돈이다. 그것도 어린 세배꾼에게는 거액의 용돈이 들어 오는 일이니 설맞이 기대는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세배를 받는 어르신네들은 준비하여둔 빳빳한 신권이든 봉투를 건네줌으로써 세배꾼의 세배 행사는 일단 끝이 난다.

故鄕 떠나 타향에서 생업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고향의 그리운 부모 형제 이웃들을 만나는 기회를 주는 설은 참 좋은 명절이다. 그 밖에도 일 년 내내 뒷자리만 지키고 살아왔던 어르신의 존재를 찾아 주고 챙겨주는 날이 유일하게 설이다. 설 날에는 어김없이 집안의 어른을 아랫 몫 중앙 자리에 모셔놓고 큰절을 올리며 어르신의 얘기를 고분고분 들어주는 날이 설이다. 그러니 어린애들 못지않게 은근히 설을 기다리게 되는 어른님의 속내가 있는 것이다.

어르신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지체 높은 대통령. 국회의원. 돈 많은 재벌그룹 회장. 공부 많은 대학교수보다도 어르신이 더 높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이 대접받지 못한 세상은 천민(賤民)의 세상이다. 어르신을 몰라보는 세상은 망할 세상이다. 어르신은 국가 구성원의 원로로서 그 앞에 고개 숙이며 예의를 갖추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며 사회적 질서가 아니겠는가? 질서가 없는 사회는 암흑세상이다. 길거리에서 싸움질하다가도 어르신이 오시면 싸움을 멈추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내 생각과 이해가 상당히 다르더라도 어르신의 의견에 공손히 따르려는 자세라면 흐뭇하지 않겠는가? 어르신이 의기소침하여 남의 눈치나 보며 나약하게 살아가는 세상은 슬픈 세상이다. 어르신이 구석에서 큰 목소리에 눌려 눈치나 보는 세상은 빌어먹을 세상이다. 밀림의 맹수들도 위아래의 질서가 엄존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사회에서 질서가 무너진다면, 인간 세상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질서는 우리 서로가 받들며 더불어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평화의 가치라는 생각이다. 인류사회에서 선진국의 정의는 단연 제도적으로 인간의 기본권이 존중되며 질서가 확립된 나라를 선진국으로 치고 싶다. 잘 산다는 정의는 돈이 많고 생활이 풍족하며 국민의 학력 수준이 높다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질서가 없는 나라는 곧 미개한 나라라는 분명한 소신이 있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라 할지라도 인간사회의 질서가 파괴된 나라라면 불안하고 험악한 세상이 될 것이다. 힘센 돼지가 몇 줄의 진주 목걸이를 걸고 날뛰는 꼴이라 비교되는 것이다. 그리스 속담에 집안에 어르신이 계시지 않는다면 빌려서라도 어른을 모셔야 한다고 하였다. 가정과 직장을 이끌어 나가는 대는 어르신의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와 더불어 질서의 중요성도 포함되었다는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우리의 아름다운 교훈이었던 장유유서와 경로효친(長幼有序·敬老孝親)을 앞세우는 예의의 나라 동방 예의 지국에 사는 우리에게 왜, 그렇게 지나친 기우를 하느냐고 나무라 주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으면 좋겠다.

세뱃돈이 있는 설이어서 어르신이 아랫목 대접받는 설날이라면 서글퍼진다. 어르신이 되기까지 한 가정을 이끌며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되었던 그간의 과정과 노고가 가벼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르신은 마땅히 존경받고 존중하는 세상이 진정한 인간사회며 질서가 살아 숨 쉬는 으뜸 세상이라는 소박한 주장을 해 본다. 날마다 어르신이 대접받고 기다리는 설이 항상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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