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빈집도 건축사 날인 해체계획서 제출의무
정부, 올 초 ‘절차 간소화’ 밝혔지만 어째 ‘조용’
장성군이 환경저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방치된 빈집 및 건축물을 정비해 안전하고 쾌적한 마을 환경 조성으로 군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정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시행하는 빈집정비사업이 때아닌 ‘건축사 배 불리기’ 논란을 낳고 있다. 빈집 철거 때 건축사 날인이 포함된 해체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되면서 건당 5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이는 지난해 8월 건축물관리법 강화로 규모와 관계없이 전문가 검토를 거친 해체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열린 제355회 장성군의회 제2차 정례회 제1차 산업건설위원회 건설과 소관 행정사무감사에서 오원석 의원은 “주민들이 비용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질의했고 건설과장은 “작년 8월 해체계획서에 건축사 등의 서명이 들어가도록 법이 강화돼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며 “그래서 작년까지 건당 100만 원이었던 지원 비용을 올해부터 200만 원으로 상향했다”고 말했다. 2022년 빈집정비사업 건수는 모두 62건이며, 이 중 17건은 8월 이후 시행됐다. 올해는 현재까지 44건의 빈집정비를 지원했고, 연말까지 2~3건이 추가될 수 있다. 해체계획서 작성 비용만 2천만 원이 넘는다.
2021년 빈집 수 실태조사 결과 빈집정비사업 대상인 1년 이상 미거주 농촌주택 또는 건축물은 총 283건이다. 앞으로도 180건 이상이 남은 셈이다.
순창군 등 ‘검토비 면제 협약’
2021년 6월 9일 광주 학동 4구역 건물 붕괴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 정부는 건축물 해제법을 전면 강화했다. 사고 원인으로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공사하거나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이 지적되면서 2022년 8월 건축물관리법 및 시행규칙을 강화한 것. 이에 따라 건축물 해체 공사 허가 대상이 확대돼 건축물 철거 전 건축물 해체 신고 시 건축사 또는 기술사가 검토·날인한 해체 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정부가 건물 규모와 관계없이 해체 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전문가에게 검토받는 과정 등을 적용함으로써 농어촌 주택이나 소규모 주택 등 소형 건축물을 철거할 때도 계획서 제출 등 과도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5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하는 데 대한 민원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특히 농어촌 빈집의 경우 해체 허가 신고 절차에서 예외를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거셌다.
이에 정부는 올 3월 건축물 철거 과정에서 붕괴 등 사고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 해체 관련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도록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또 해체계획서 작성과 감리비 등의 비용을 책정할 때 사용할 적정 기준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올해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별다른 지침을 내놓지 않아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불필요한 행정절차로 인해 지자체 지원 부담은 높아지고 건축사만 배 불리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주민 불편과 부담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대처한 지자체도 눈에 띈다.
순창군은 올 6월 빈집정비사업 추진 시 건축법상 제출해야 하는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비 전액 면제를 골자로 건축사들과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농촌주거환경개선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비 전액 감면 관내 건축사 사회 공헌 업무 협약’에 따라 순창군 내 4곳의 건축사무소에서는 2023년 빈집정비사업 대상 177건에 대해 검토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평균 60만 원으로 계산했을 때 1억 원에 육박한다. 진안지역 건축사회는 군에서 시행하는 빈집정비사업 대상자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비는 전액 면제하고, 주민등록법에 따른 주민등록기준 진안군 주민에 한해 주거용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비를 50% 감경해주기로 했다.
합천지역건축사회는 합천군과 최대 90% 감면 협약을, 거창건축사회와 충남건축사회 태안지역회는 각각 70%와 50% 감면 협약을 맺었다.
일단 정부의 건축물 해제법 완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긴축 재정이 불가피한 재정 여건상 무조건적인 지원액 인상보다는 제도 관계자들과 행정, 주민이 공생할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