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혐오 부추기는 먹쇼
정치혐오 부추기는 먹쇼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3.07.09 20:48
  • 호수 9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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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 인사말에 진지 드셨어요가 있다. 보통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난 뒤 동네 어딘가에서든 어른을 만나면 안부 인사가 진지 드셨어요로 식사하셨는가를 묻는 말이다. 진지는 한자로 진지(眞摯)라고 쓰는데 일설에는 진시(辰時, 오전7~9)에 먹는 밥이라 하여 진지라고 했다고도 한다.

조선의 왕은 하루 다섯 끼니를 먹었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죽으로 간단하게 속을 달래고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전에 밤참을 먹는다. 하지만 서민들은 하루 두 끼니를 먹었는데 옛 문헌에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조석(朝夕) 해결에도 급급한 처지라는 내용이 전한다. 조석은 아침과 저녁 식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농사철에는 아침과 저녁 사이에 새참을 먹었는데 요즘의 점심과 같다.

수행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 매우 엄격하여 반드시 때를 맞춰 먹었고, 적게 먹으며, 천천히 먹고, 육식은 삼갔으며 마늘과 같은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름에 튀기거나 오래된 음식과 술을 곁들이지 않았다. 인도와 남방의 수도자들은 사시(巳時)인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 한 끼니를 먹고, 오후에는 과일즙 등만 먹는데 하루 한 끼니만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민들이 하루 세 끼니를 먹게 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으로 산업화가 시작되고, 통일벼 등 볍씨 품종 개량을 통해 쌀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부터다.

물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은 종교인에게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행하였고, 정치 탄압에 항의하며 자유를 요구하는 단식 투쟁은 목숨을 건 가장 강력한 항거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1983년 언론 통제의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들의 복직, 정치활동 규제의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을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지방자치 실현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하였고 뜻을 관철시켰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고 박관현열사는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일 동안 옥중단식을 하다가 끝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단식 투쟁은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100일 가까이 금식한 비구니 지율스님으로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했을 때 몸무게가 25kg에 불과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에는 단식과 금욕을 지키는데 비움으로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함이다.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행자들은 하안거와 동안거가 끝나는 1주일 동안 금식과 묵언(默言)으로 용맹정진을 한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수 방류를 반대하며 민주당 윤재갑 의원이 단식을 시작하자 우원식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이에 동참하였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횟집을 다니며 먹방을 하더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수조에 있는 바닷물을 마시는 먹방을 하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단식투쟁할 때 일부 극우 유투버들이 단식장 부근에서 먹방을 하였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대구에서는 이슬람 성전 신축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성전 공사장 입구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잔치를 벌였다. 이슬람 신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수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폐기수가 방류된 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먹고,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뜬 바닷물을 마셔야 한다. 한편 일본의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기와 관련해 "임박한 해수욕 시즌은 피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대한민국 여당인 국민의힘이 일본의 연립 여당보다 더 일본스럽다. 단식은 가장 절박하고 절실할 때 항거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인데도 이를 여당 국회의원들이 희화화하고 조롱한다면 정치는 사라지고, 혐오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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