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최운산과 최재형
독립운동가 최운산과 최재형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3.06.12 10:13
  • 호수 9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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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군과 일본 경찰의 검속을 피해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군에는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 최재형, 북간도(두만강과 룽징, 하얼빈)에 최운산, 서간도(압록강, 단둥)에 이회영이 중심이었다.

이조판서 이유승의 아들인 이회영과 그의 형제 등 일가는 조선에 있던 전 재산을 팔아 중국으로 간 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의 훈련과 무기구입 그리고 조선인의 교육 등을 위해 모든 재산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이시영이 이회영의 동생으로 그 일가의 독립운동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최재형과 최시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재형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9살 때 그의 부모가 연해주로 이주하여 살면서 그곳에 터를 닦았다. 일찍이 장사 수완이 뛰어나 17세부터 장사로 돈을 벌기 시작하여 연해주에 많은 땅을 사고, 농장을 운영하였다. 최재형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대동공보를 주 2회 발간하여 교포들에게 발송하였으며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척살하기 전 극비 모임을 주선하기도 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 1920년 일본군과 거리 대항전을 하던 중 일본군의 총탄을 맞아 순국하였다. 최재형의 아버지는 가난한 소작농이었으며 어머니는 기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조선에서 가난 때문에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였고,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9살의 어린 나이에 추운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최운산은 대한독립군, 국민회군,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초대총사령관 최진동의 동생이며 독립운동가 최치흥의 형으로 대한북로독군부의 참모장을 지냈다. 봉오동 전투로 잘 알려진 홍범도는 대한북로독군부의 제1부장이었으며 최운산은 독립군의 무기와 식량 그리고 의복을 보급하는 총책임을 맡았다. 최운산은 제면공장, 제유공장, 성냥공장, 비누공장 등 여러 공장을 운영하고 축산 및 곡물무역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았으나 자신의 전재산인 150억을 모두 독립운동에 사용하였다. 일제에 의해 여섯 차례나 투옥되었으며 1945년 해방을 겨우 40여일 앞두고 고문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한편 현충일이었던 지난 66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역위원회, 대전 민중의 힘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반민족행위자, 군사반란가담자, 양민학살 관련자 등이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것은 역사의 수치라며 현충원에서 다른 곳으로 이장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대전현충원에 묻힌 김창룡은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고,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강제 점령하고 해체하였으며 무고한 양민을 고문, 협박하여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게한 인물로 알려졌다. 1956130일 특무대 대령이었던 허태영이 김창룡의 죄상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저격 살해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김창룡을 중장으로 특진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국군장을 치러주었으며 모든 군부대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승만이 1956년 제정한 현충일인 66일이 1949년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경찰과 김창룡이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체한 날이다.

김창룡은 1941년 일본군 헌병보조원이 되어 항일독립지사를 감시하였고, 해방될 때까지 50여개의 항일 조직을 적발하여 특진을 거듭하였다. 마땅히 단죄했어야 할 그는 이승만의 공산당 척결에 앞장서 특무대장으로 진급하였고, 수많은 군인과 양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죄없는 죽임을 당하게 했다. 김창룡은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임시정부 요인인 김구 선생과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그리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가 안장된 효창공원은 국립 시설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독립된 국가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최운산의 자손들이 16평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고, 일제 부역자들이 부귀를 누리고 있다면 이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일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운산과 최재형을 기억하고 그들을 예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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