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후, 백 ,자, 남
공, 후, 백 ,자, 남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3.06.05 10:28
  • 호수 9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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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봉건제를 사회질서의 기본으로 삼은 나라다. 봉건제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로 왕과 양반(귀족) 그리고 평민과 노비 등의 신분이 분명하게 구분되었으며 신분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식에게 세습되었다. 반역죄를 짓게 되면 자녀와 아내가 노비로 전락하게 되고, 낮은 신분이라도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벼슬을 주고, 양반의 신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봉건제 신분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럽 등에서도 신분의 구분은 분명했다.

우리는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성씨 뒤에 공()을 붙여 김공, 이공, 박공 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봉건사회에서 황제나 군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위인 공작(公爵) 또는 대공(大公, 왕자)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신분은 황제와 왕(제후)이었고 다음으로 공작(公爵), 후작(侯爵), 백작(伯爵), 자작(子爵), 남작(男爵)이라는 다섯 등급의 작위가 있었으며, 가신들에게는 경(), 대부(大夫), ()라는 계급의 차이가 있었으며 백성들은 사농공상(사농공상)으로 분류되었다.

공작은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를 칭하는 말이었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대군이다. 후작은 보통 왕위에 오르지 못한 공작의 아들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백작이나 자작 등도 이와 비슷한 연유로 붙여진 벼슬이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관리에게 후작이나 백작의 벼슬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후작이나 백작의 신분은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신분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역모나 반란이 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형제의 난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작이나 백작 등은 왕의 혈족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대공(大公)이라 하여 황제와 왕의 아들을 일컫는 칭호로 사용하였는데 조선에서 왕비에게서 낳은 아들을 대군(大君)이라 칭하고, 빈이나 후궁에게서 낳은 임금의 아들은 군()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의 대군과 같은 의미다.

한편 경()은 고려시대 중앙과 서경(西京)의 관서에 설치된 관직으로 부서에 따라 장관 또는 차관이 되었다. 고려 문종 때에 정비한 관제에서 경은 종3품이었다. 임금이 정2품 이하의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쓰기도 했다. “()의 충성심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오

우리 주변에서 흔히 00공파 몇 세 손이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게 된다. 여기서 공()은 매우 높임말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상대를 높여 부를 때 성씨 뒤에 공을 붙여 김공 또는 이공 등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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