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회 입암산성 위령제 열려
제 11회 입암산성 위령제 열려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3.04.04 01:02
  • 호수 9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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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정 윤진 장군 등 정유재란 때 순절한 영령

331일 오전 1030분 입암산성 입구 율정 윤진 순의비 앞에서 장성문화원 주최로 제 11회 입암산성 위령제가 봉행되었다. 위령제의 초헌관은 변온섭 봉암서원 이사장이 아헌관은 윤석근 전 전남도청 과장이 종헌관은 정상훈 내장산국립공원 남창분소장이 맡아 헌작하였다.

입암산성은 사적 3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며, 높이 3m, 길이 약 5km의 산성이다.

1256년에는 몽고군이 전라도까지 쳐들어 왔는데, 송군비가 입암산성을 지키면서 큰 전과를 올렸다고 전하고, 1593년에는 장성 현감으로 제수된 이귀가 산성을 수축하고 식량과 무기 등을 비축하여 일본군에 대비하기도 했다.

입암산성은 북으로는 호남평야, 남으로는 나주평야의 곡창지대를 지켜낸 호남의 대표적인 산성이었고,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피신해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입암산성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던 율정 윤진 의병장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윤진(1548~1597)1548(명종 3)에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율정이다. 율정의 아버지가 강원도 양구에서 유배할 때 율정을 낳았고, 그 뒤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윤진이 전라도로 오게 되었다. 윤진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하서 김인후가 그를 보고 칭찬하며 큰 재목이 될 것이라는 말도 하였다고 한다.

윤진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경기도 과천에서 상을 마치고, 순릉 참봉과 건공감 봉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성으로 내려와 15927월 김경수, 기효간과 함께 장성 남문창의를 주도하고 격문을 함께 작성하였다.

윤진은 장성의병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도로 들어가는 요충지인 입암산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에게 입암산성을 고쳐 쌓을 것을 건의하였다. 윤진은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성을 고쳐 쌓았으며, 군량미를 모아 두기 위한 창고를 마련하고 대포를 쏘기 위한 포루를 새로 만들어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597년 일본군이 남원을 지나 장성으로 돌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윤진은 의병을 모아 성을 지키며 대비하였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윤진은 끝까지 맞서 싸웠으나 성은 무너졌고, 끝까지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윤진의 부인 권씨는 적에게 욕보지 않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을 따랐다.

이후 조정에서는 윤진의 충성심과 공을 높이 기려 좌승지 벼슬을 내리고, 부인에게는 정려를 명했다. 그리고 입암산성을 다시 수리하면서 윤진 장군의 충절을 널리 후세에까지 알리고자 순의비를 세웠으며 봉암서원에 배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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