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비나이다 풍년과 안녕을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풍년과 안녕을 비나이다”
  • 권진영 기자
  • 승인 2023.02.14 00:36
  • 호수 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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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역사 자랑하는 ‘생촌당산제’ 5일 열려
마을 가운데 내당산에서 농악을 치는 모습
마을 가운데 내당산에서 농악을 치는 모습

코로나19가 사그라든 덕분에 올해 생촌 당산제는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주민 40여 명이 마을 행사에 참여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임진왜란(1592)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생촌 당산제의 역사가 또 한 번 써진 것만도 감사하고 기쁜 일인데, 당산제를 주관한 김진현 노인회장과 김성규 이장을 비롯한 생촌마을 주민들이 코로나19 완전 소멸과 소원성취를 빌어준 덕에 올 한해 장성군민에게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동제(洞祭), 동신제(洞神祭)라고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에서 벗어나고 농사가 잘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해달라고 비는 것으로, 6·25가 일어난 해 당산제를 모시지 못하자 마을에서는 추워서 못 살겠다’ ‘꿈에 무서운 것들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다음 해부터 간단하게나마 당산제를 지냈다 한다.

 

소변보면 머리감기, 대변보면 다시 목욕

제사 끝날 때까지 물, 음식 참는 제관도

생촌마을 주민들은 음력 정월 초닷샛날 마을총회를 열고 당산제를 올릴 제관 3명을 뽑았다. 김진현 노인회장은 원래는 생기복덕(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따져 제관을 뽑는데 마을에 사람도 많지 않고, 금기해야 할 것들이 많은 탓에 제관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제관은 남자만 할 수 있는데 복(부모상, 집안상)을 입은 자와 부인이 임신한 자, 궂은 곳에 다녀온 자는 제외하고 보름날의 일진에 가장 길한 사람을 뽑는다. 제관은 음식과 제사 준비를 도맡아 하게 되는데 장모짐을 하러 갈 때부터 제사가 끝날 때까지 소변을 보고 난 뒤에는 머리를 감아야 하고 대변을 보았을 때는 반드시 목욕을 다시 해야 한다니, 예로부터 서로 핑계를 대서 제관을 맡지 않으려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금도 제관들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음력 정월 열흘 마을 울력으로 오당산과 마을 주변을 청소한 후 음력 정월 열사흘에는 제관들이 목욕재계한 뒤 제기와 제물을 준비하고 금줄을 친다. 어두컴컴한 밤에 제물을 지고 길도 나지 않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시절부터 과일 5가지, , 나물 5가지, 떡 등 간소하게 준비했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때부터는 마을 사람 전체가 생선이나 고기 등 비린내 나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마을 입구 2곳과 오당산, 제관들 집에 금줄을 친 뒤에는 마을 바깥으로 나갈 수도, 바깥사람이 마을로 들어올 수도 없다. 새끼줄 묶은 대나무 밑에는 붉은빛의 황토흙을 붓는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는 등과 음식을 만들고 샘을 품어낸다. 공동우물을 깨끗이 품고 청소한 뒤에는 제사가 끝날 때까지 물을 길어갈 수 없다. 모두 액을 막고 복을 지키기 위한 수고와 참음이다.

 

외당산에 줄을 입히는 모습
외당산에 줄을 입히는 모습

9가닥이 2가닥으로, 사람이 그리운 마을

보름날 오전 일찍 짚을 가지고 마을 중앙 당산나무에 모여 속줄 두가닥과 겉줄 일곱가닥을 꼬는데 이번 당산제 때는 속줄 두 가닥만 만들었다. 새끼줄을 꼴 사람도, 들 사람도 많지 않은 탓이다. 농악이 앞서고 줄을 든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오당산을 돌고난 뒤 마을 앞 도로변에 줄을 놓는다. 이후에는 남녀 편을 만들어 중 당기기를 세 번 하는데 예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는 여자 편에 섰다고 한다. “텔레비전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당산제 줄당기기는 젊은 사람들의 놀이가 돼줬다줄 들고 돌면서 서로 넘어뜨리는 장난을 쳐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고 말하는 김진현 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생촌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는 오당산은 천룡당산, 정추당산 두 곳, 내당산과 외당산이다. 자정이 되면 천룡당산부터 고랑똠 샘, 양짓똠 샘, 내당산, 외당산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물방아똠에 가서 도깨비 밥을 주고 난 뒤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온다.

이렇게 제관들의 의식이 모두 끝나면 보름날 오전 일찍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다.

 

생촌당산제를 주관한 김진현 노인회장
생촌당산제를 주관한 김진현 노인회장

힘들다고 그만할 수 있는 일 아냐

제관들이 천룡신께 제를 올리고 있다
제관들이 천룡신께 제를 올리고 있다

김진현 회장은 생촌당산제는 1980년 남도문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국내 주요 언론은 물론 일본서도 취재해 갔다면서 당시 상금으로 받은 60만 원으로 마을 논을 사서 유지해오고 있지만, 지금은 마을에 사람도 줄고 주변 관심도 적어져 행사 준비가 녹록치 않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생촌당산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군과 농협이 조금씩 도와주고 뜻 있는 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기도 한다예전부터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병이 돌면 어른들은 당산제를 잘 못 지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6·25 때 끊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 오늘까지 온 것처럼 힘이 든다고 그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성규 이장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도 의욕적으로 배우면서 참여하고 있다.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생촌당산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산제는 단순한 무속신앙이 아니다. 마을공동체를 결속하는 공동체의식의 뿌리이자, 지키고 계승해야 할 전통이며 자부심이다.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에 더해 군민의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올 정월대보름 행사는 생촌마을 당산제를 비롯해 동화면 축내마을 당산제 북하면 월성마을 당산제 동화면 구산마을 당산제 황룡면 구대해마을 기원제 삼계면 달집태우기 동화면 월전마을 달집태우기 삼계면 금성마을 달집태우기 장성읍 유탕 1·2리 당산제 황룡면 맥호 1리 달집태우기 북하면 연동마을 당산제 삼계면 도동마을 당산제 북하면 송정마을 당산제 삼서면 달집태우기 동화면 동계마을 오리솟대제 등 지역 곳곳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소멸해 일상생활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생촌당산제의 또 다른 매력은 시대상을 반영해 새롭게 쓰이는 축문이다. 다음은 올해 축원비선이다.

 

해동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생촌마을 주민이 천룡 정추 사단 신께 비나이다. 계묘년 새해에도 마을 주민 모두 몸 건강하고 소원성취할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코로나19가 완전히 소멸하여 일상생활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여 주시고, 우리 마을에서 살다가 객지로 떠난 모든 분들도 소원성취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마을 주민 모두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소지를 올리며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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