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쌍계루 현판 시서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화합정신 (3)
백양사 쌍계루 현판 시서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화합정신 (3)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7.11 22:46
  • 호수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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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조선대 특임교수
강암 송성용이 쓴 쌍계루 편액
강암 송성용이 쓴 쌍계루 편액

<만남과 화합의 장으로서 쌍계루의 의미>

쌍계루는 한국불교의 정맥인 조계종의 대덕스님들과 조선유학의 정맥인 성리학자들과의 만남이다. 당대 불교계를 대표하던 각진국사, 대선사인 청수스님, 무열선사, 조선조 태종 때 마지막으로 국사가 된 절간대선사와 근대에 이르러서는 만암대종사와 서옹대종사 그리고 초대 동국대학교 총장인 권상로 스님의 시문과 성리학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노사 윤병구 선생과 현대에 이르러 조순 전부총리의 시문이 종교를 초월하여 함께 화합을 이루었다.

다음으로는 이념이 다른 분들의 글이 쌍계루에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인물이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으로 포은은 목은 이색의 수제자로 고려말 개혁파의 일원이었으나 고려를 유지하여 개혁하자는 온건파로 불교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삼봉은 역성혁명을 통한 개혁을 부르짖어 포은과는 갈등관계에 있었으며 조선의 개국이념으로 유교를 국책으로 삼아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주도하여 포은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은과 삼봉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 후 포은선생은 집권세력의 필요에 의해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삼봉선생은 개국 1등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역도(逆徒)로 몰려 죽임을 당한 뒤 조선조 말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신원(伸冤, 원통함이 풀리다)되었다. 이처럼 정치노선과 사후의 모습이 극렬히 대비되는 두 사람의 글이 쌍계루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쌍계루가 이념을 초월하여 대화합을 이루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조선왕조 때 당파(黨派)로 인한 대립과 갈등의 폐해가 극심하던 때 당색(黨色)이 다르면 서로 왕래조차 하지 않았고, 정여립(鄭汝立)사건 이후 서인(西人)의 공격에 앞장섰던 동인(東人)의 우두머리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의 글과 서인을 대표했던 사암 박순(思菴 朴淳)의 시문이 쌍계루에 함께 걸려있으니 이념을 초월한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로는 세대 간의 만남이다. 쌍계루 현판에 걸려있는 시 가운데는 조손(祖孫)사이의 시가 함께 걸려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다. 우선 목은 이색과 아계 이산해의 사이로 이산해는 이색의 7대손이다. 포은 정몽주와 월사 이정구의 사이는 외가의 후손이 되는 사이이고, 대제학 이민서와 대제학 이휘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다. 노사 기정진과 송사 기우만도 조손관계이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종조부인 생원 김항주와 나주목사 김유희 사이도 조손관계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차운
하서 김인후 선생의 차운

하서 김인후와 후손인 자연당 김시서 그리고 쌍계루 설을 쓴 대문호 서거정선생은 청수 대선사의 속가 형인 이암(李嵒)의 외현손(外玄孫)이다. 이렇듯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하는 노소동락(老少同樂)의 화합의 장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쌍계루는 사제 간의 만남과 화합의 장이라는 점이다. 우선 각진국사와 청수대선사의 만남으로 두 분은 속가(俗家)로는 숙질(叔姪) 사이나 출가하여서는 도를 이은 사제지간이다.

스승인 목은과 제자인 포은과 삼봉의 사이는 같은 제자였으나 끝내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였다. 하지만 쌍계루에서는 다시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런 전통은 조선조 이후로 이어져 하서 김인후의 글과 생원 오대박(오대박), 사제 간의 조계종 종정 역임으로도 화제가 된 만암대종사와 서옹대종사의 시도 함께 걸려있으니 사제간 화합의 뜻을 깊게 한다.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또한 쌍계루는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당대를 대표하던 문장가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고려말 대문장가 목은 이색의 기문(記文)과 영남 사림파의 영수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이 조선조 최고의 선비라 추앙했던 정도전의 기문 그리고 두 말할 필요가 없는 포은 선생의 시,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의 쌍계루 설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를 남긴 하서 김인후의 시, 호남가단의 창시자요 강호가도의 선구자인 면앙정 송순, 삼당시인으로 당대 최고였던 최경창, 이달, 백광훈. 특히 손곡 이달(蓀谷 李達)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스승이기도 한 대문장가다.

서옹대종사가 쓴 쌍계루
서옹대종사가 쓴 쌍계루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불교개혁가인 만해 한용운스님과 한시(漢詩)를 쓰고 읊을 수 있는 마지막 관리라는 약천 조순(若泉 趙淳) 전 부총리의 시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나라를 빛낸 문인들의 글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쌍계루만의 자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만남은 현판 글씨에서도 나타난다. 현대 유가(儒家)를 대표하는 명필 강암 송성룡(剛菴 宋成鏞)의 현판 글씨와 현대불교를 대표하고 참사랑운동으로 시대에 맞는 불교운동을 일으킨 서옹 상순(西翁 尙純)대종사의 현판 글씨가 좌우로 함께 걸려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쌍계루는 우리의 전통계승과 세계화가 만나는 곳이다. 쌍계루 서편에는 북의 마하연(摩訶衍)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참선 도량으로 기라성같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불가의 성지와 같은 운문암이 자리잡고 있어 지금도 눈 푸른 납자들의 쉼없는 수행정진으로 한국선의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편 계곡에 천진암은 비구니들의 수행처이며 사찰음식의 본산으로 세계의 유명한 세프(요리사)들이 찾아와 공부할 정도로 K-FOOD의 총본산이 되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으므로 운문암의 전통 계승과 천진암의 세계화가 만나는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김병조 조선대 특임교수
김병조 조선대 특임교수

지금까지 종교와 이념과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하는 이곳 쌍계루의 의미를 짚어 보았다. 분열과 갈등의 시기, 이 시대의 최고의 화두가 화합과 통합일진데 두 물줄기가 모여 하나가 되는 이곳 쌍계루야말로 화합과 통합의 성지(聖地) 로 자리매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은 선생의 시, ‘기제 쌍계루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로 이글의 결론을 맺고자한다.

불의하일공군등(拂衣何日共君登) : 속세에 묻은 먼지 다 털어버리고 어느 날 그대와 함께 쌍계루에 오를꼬

그렇다. 종교와 이념, 지역과 세대간의 갈등과 대립을 다 털어버리고()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쌍계루에 올라(), 백양야생차(白羊野生茶)를 마시며 백양(白羊)과 같은 천진(天眞)한 마음으로 담소(談笑)나눌 수 있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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