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쌍계루 현판 시서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화합정신 (2)
백양사 쌍계루 현판 시서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화합정신 (2)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7.04 10:46
  • 호수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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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방송인, 조선대학교 특임교수)

<포은 정몽주가 불후의 명시를 남기다>

한림학사로 불린 무열선사의 시
한림학사로 불린 무열선사의 시

청수대선사의 문도이며 포은에게 기문을 청한 절간스님은 포은(圃隱) 정몽주와 평소 많은 시를 주고받는 문우(文友)로 포은집(圃隱集)에서도 포은과 가장 절친한 불교계 인맥으로 나타나 있다. 포은 정몽주는 오래도록 깊은 인연이 있었던 절간스님의 말씀과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목은 이색의 기문을 기초로 기제 쌍계루(寄題 雙溪樓)’라는 명시를 남기게 되었는데 기제(寄題, 지어 보내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직접 본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기제 쌍계루(寄題 雙溪樓)’

 

求詩今見白巖僧(구시금견백암승) : 지금 시를 얻고자 하는 백암산 스님을 보니

把筆沈吟愧未能(파필침음괴미능) : 붓을 쥐고 시를 읊으려 하나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淸叟起樓名始重(청수기루명시중) : 청수스님 누각 세우니 그 이름 소중하고

牧翁作記價還增(목옹작기가환증) : 목은선생 기문 지으니 그 가치 더욱 높아라

煙光縹緲暮山紫(연광표묘모산자) : 노을빛 아득하니 해질녘 산 모습 아름답고

月影徘徊秋水澄(월영배회추수징) : 달그림자 어른거리니 가을 물빛 더욱 맑아라

久向人間煩熱惱(구향인간번열뇌) : 오랫동안 인간사에 번뇌로 시달렸는데

拂衣何日共君登(불의하일공군등) : 어느 날 속세의 먼지 털고 그대와 함께 누각에 오를꼬

 

목은 이색 쌍계루기
목은 이색 쌍계루기

필자가 보기에도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전형적인 틀을 잘 갖춘 명시다. 이 시를 남긴 포은 정몽주는 목은 선생이 동방 성리학의 비조(鼻祖)이자 사림파(士林派)의 원조로 칭송한 우리나라 성리학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선도자이다.

포은의 성리학은 수제자인 길재로부터 김숙자와 그의 아들인 김종직 그리고 김굉필과 조광조, 백인걸로 이어져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루었고, 김종직, 손중돈, 이언적, 이황으로 이어져 영남학파를 이루었다. 또 다른 맥은 김종직, 김안국, 김인후로 이어져 호남학파의 정맥(正脈)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 정점(頂点)에 포은 선생이 있어 그분의 시에 차운(次韻)함을 영예로 여겨 수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다투어 차운하여 시를 남기게 되었다.

차운한 시를 편의상 명문(名門)의 기준이 되는 도학(道學), 문장, 충효, 과환(科宦)의 순서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도학 부분에서는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인 소재 노수신(蘇齋 盧守愼), 조선 성리학 6대가 중에 한 분인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 기호학파의 정맥은 잇는 병계 윤봉구(屛溪 尹鳳九)선생의 차운이 있다.

문장부문에서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한 서거정(徐居正), 사암 박순(思庵 朴淳), 이민서(李敏敍), 오도일(吳道一), 이산해(李山海), 이정구(李廷龜) 등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의 차운과 삼당시인(三唐詩人), 최경창(崔慶昌), 이달(李達), 백광훈(白光勳)의 시는 물론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면앙정 송순(俛仰亭 宋純)시가 걸려있다.

기제 쌍계루
기제 쌍계루

충효`절의 부문에서는 임란 의병장 충강공 김재민(金齋閔),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金尙憲), 의병장으로 순국한 면암 최익현(崔益鉉), 한말 의병장 송사 기우만(奇宇萬), 선생 등의 시가 차운되었다.

과환(科宦) 부문에는 영의정 박순(朴淳), 이산해(李山海), 조인영(趙寅永)과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이휘지(李徽之)와 판서 홍종음, 윤자덕 등 삼공육경(三公六卿)외에 관찰사 이돈상, 장성부사 김재홍 등 수많은 수령방백 등 당시 조선조를 이끈 문인달사(文人達士)의 글이 을 이루니 가히 문림(文林)과 시림(詩林)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쌍계루에는 포은 선생의 원운(原韻)과 이에 차운(次韻)한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목은 선생으로부터 스님 중에 한림학사로 불리며 멀리 원나라까지 문명(文名)을 떨친바 있는 굉연 무열(宏演 無說) 선사의 시에도 차운한 시가 있음을 지나쳐 보아서는 안 된다.

 

<스님 중에 한림학사 무열선사의 선시>

上房鐘鼓晝依俙(상방종고주의희) : 절깐 종고소리(쇠북소리) 낮이라 더욱 희미하고

門外橋樓面翠微(문외교루면취미) : 문밖 교루는 푸른 빛 마주하네

雲吐奇巖明綵練(운토기암명채련) : 구름 걷힌 백학봉 비단처럼 환하고

溪涵落木動淸暉(계함낙목동청휘) : 시냇가 늘어진 가지 맑은 바람에 흔들린다

世情靜與遊魚逝(세정정여유어서) : 세속의 정은 말없이 물고기 헤엄치듯 흘러가고

詩思長逐夕烏飛(시사장축석오비) : 시상은 한동안 저녁 까마귀를 쫓는다

讀破峰木翁記(독파삼봉목옹기) : 삼봉과 목은의 기문 다 읽고 나니

靑山因感昔人非(청산인감석인비) : 청산에 옛사람 없음을 이로 하여 느끼네

 

무열 선사의 이 선시(禪詩)에 차운하여 은봉 혜령(隱峯 惠寜), 중곡 경관(中谷 慶觀). 회당 중호(晦堂 中皓)선사 등 당시 불교계를 이끌던 고려말 고승대덕이 남긴 시는 포은 선생의 차운시와 더불어 쌍계루에 그 빛을 더하였다.

삼봉 전도전 백양사기
삼봉 전도전 백양사기

차운(次韻)이란 먼저 한 분이 시를 지으면 그 시의 원운(原韻)에 맞추어 다음 사람이 시를 짓는 형식이다. 포은의 차운시는 각 연에 나오는 마지막 글자인 승(), (), (), ()으로 으로 운을 맞추어 차운하였고, 무열선사의 차운시는 원운인 희(), (), (), () 음을 맞추어 차운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도전, 김인후, 송순처럼 직접 쌍계루에 올라 글을 짓기도 하였고, 노수신처럼 백양사에 주석하던 스님들의 간청으로 목은의 기문과 포은의 시를 바탕으로 차운하였다는 점에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시를 구하기 위해 애쓴 백양사 스님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포은을 찾아간 절간스님과 1562년 진도에 유배를 간 노수신에게 시를 부탁하러 간 성진(性眞) 스님 등이 있었기에 지금의 쌍계루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운의 전통은 근대와 현대까지 이어져 독립운동의 선구자 만해 한용운 스님을 비롯해 만암대종사, 서옹 종정, 마지막 한학자로 알려진 산암 변시연 그리고 조순 전부총리의 글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당대 최고의 명인현사(名人賢士)들의 200여 편이 넘는 시와 글이 숲을 이룬다는 점에서 쌍계루가 갖는 문화사적 가치는 실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쌍계루가 갖는 의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쌍계루는 서편으로 운문암(雲門庵)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동편인 천진암(天眞庵)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서로 만나 합수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두 물이 모여 하나가 되는 이곳 쌍계루는 그 이름에 걸맞게 종교와 이념,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만남과 화합의 장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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