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불여장성이 낳은 문단의 별(6) - 한국 수필의 태산 이상보
문불여장성이 낳은 문단의 별(6) - 한국 수필의 태산 이상보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6.27 15:47
  • 호수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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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동/ 시인, 장성군홍보대사

1. 이상보의 생애

한실 이상보는 1927년 장성군 삼서면 대곡리 한실에서 경주 이씨 이덕우와 이외동의 5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광주사범 강습과, 단국대 정치학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중앙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에서 '박노계 연구'로 문학석사, 명지대에서 '한국가사문학의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 정신여고 교사와 명지대 교수, 명지여고 교장, 국민대학 교수, 명예교수를 거쳤다. 노산문학회 부회장과 한국기독교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회장,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장의 일을 맡았다.

이상보는 1948년부터 시를 쓰다가 1957수필지에 수필을 발표하게 되면서 수필을 주로 쓰게 되었고, 훗날엔 가사문학에도 열중하였다. 13녀를 둔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가면서 만학도로서의 대학과 대학원 등의 학비를 벌면서 공부하고 연구했다.

기독교회의 장로로서 기독교 신앙과 교육자적 가치관이 배인 글을 쓰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노력하였다. 2020년에 93세로 소천하였다.

 

2. 이상보 문학의 성격

이상보의 글 속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 테두리 안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그의 활동 영역과 저작에는 불교적인 것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의 대표작 갑사 가는 길에서 보듯이 아무런 편견이나 기피현상이 없이 고찰 갑사를 답사하며 전해오는 불교적 전설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순수한 예술적 세계를 이루어나갔다. 그의 신실한 기독교 신앙은 많은 수필과 글에서 잘 나타나 있지만, 예술혼은 종교적 울타리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또한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인접 장르를 폭넓게 넘나들었다. 시를 창작하는 한편, 외국 수필의 번역, 서예 활동에도 상당한 조예를 지녔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품성과 정신세계가 묻어나게 마련이다. 이상보는 늘 감사하며 살았고 만족하며 살았다. 자수성가하며 학문과 예술과 신앙의 길을 구도자적으로 성취하며 살았던 그였기에 그의 문학은 아래 한 토막의 문장처럼 긍정적이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향기가 퍼질 수밖에 없었다.

강남대에 2만 5천 권의 장서를 기증한 이상보
강남대에 2만 5천 권의 장서를 기증한 이상보

 

봄은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봄처녀의 화사한 정감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봄은 눈 부신 햇살과 함께 아침에 찾아왔다. 어서 일어나라 한다. 그리고 새옷을 갈아입고 일터로 나가라 한다. 오직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금 처음부터 시작하라고 소근거린다.” 봄이 오는 소리에서

 

3. 이상보의 인품과 그의 세계

이상보는 풍채가 좋고 한복을 즐겨 입는 타고난 교육자요, 선비였다. 장성의 선비정신과 문장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상보는 기독교 장로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선비적 기품과 학자적 연구 자세, 종교적 구도(求道)의 자세가 연어와 같은 속 살결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맑고 곧은 심성과 선명한 선의지에 의한 삶의 자세가 면면이 배어 나오고 있다.

이상보의 삶은 개척자적인 삶이었다. 그는 맨바닥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그는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가정을 일으켜 세워야 했고, 학문과 예술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했다. 그는 목표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다. 그는 한국문화와 그 가치에 대한 관심, 역사적 유물에 대한 탐구, 한국적 문학 장르인 가사문학 연구와 자료의 발굴, 한글에 대한 관심과 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다. 또 한국 수필의 신변잡기에서의 탈피, 불교문화를 폭넓게 수용한 창작활동, 기독교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는 단순한 수필가가 아니라, 품격 높고,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대단한 교육자, 학자, 예술가, 신앙인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배우고 깨우친 제자들의 울림과 존경 또한 컸다.

이상보의 육필 원고
이상보의 육필 원고

그는 한글 사랑이 유난해서 한글의 발전과 한글문학의 세계화에 특심을 품고 노력하였으며, 한글박물관의 건립과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사위 정두언 의원과 함께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좁쌀책(손바닥만한 책)을 즐겨 수집하였으며, 고서적과 유물 등 지적 자산의 수집과 연구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이상보의 이러한 성향은 한문학과 고서연구, 박인로의 가사를 비롯한 한국의 가사문학의 발굴과 연구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가 평생 관심을 다해 수집한 25천 권이 넘는 장서는 강남대에 고스란히 기증했다.

 

4. 이상보의 학문적 결실과 문학작품

1) 학력

1943 광주사범을 거쳐 1950년 세종중등국어교사양성소 졸업, 1954년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졸업, 1956년 동 대학원 졸업. 1974년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문학박사

이상보의 한글 서예
이상보의 한글 서예

2) 경력

서울문리사대 부교수(19571964), 국민대학교 명예교수(1984), 교수수필가모임회 회장(1986), 한국고서(古書)연구회 회장(1991), 한국고서(古書)연구회 고문(1986), 한국기독교수필문학회 회장(1992), 한국수필문학회 회장(1994), 한국고전문화진흥회 회장,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부회장(1999)

3) 수상

국민훈장석류장(1980)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 문학부문 대상(1984), 대통령 표창(2000)

4) 수필집

사색의 편린(片鱗)』 『초원의 백마』 『시간의 흐름 속에』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빛 하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눈을 감고 바로보기』 『사랑의 꽃잔치』 『인도차이나 역사기행』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 갑사가는 길과 관련된 갑사의 남매탑
이상보 갑사가는 길과 관련된 갑사의 남매탑

5) 학문연구(저서)

박노계연구(朴蘆溪硏究)』 『불교가사의 연구』 『명시조감상』 『한국가사문학의 연구』 『한국고시가의 연구』 『노계시가연구(蘆溪詩歌硏究)』 『한국가사선집』 『한국불교가사전집』『한국고전시가연구 속』 『17세기 가사전집』 『18세기 가사전집』 『조선시대시가연구』 『번역 파한집

6) 대표작

대표작은 갑사로 가는 길, 짜장면 교수, 괌에서 겪은 일, 국추, 얼빠진 사람들인데, 모두 재미가 넘치는 작품들을 썼고 그의 작품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1975~1983)에 실렸다.

 

5.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이상보는 고향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은 고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안다. 오히려 고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고향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또 그리워한다. 이상보가 즐겨 사용한 호가 고향마을 한실이었음을 보면, 그 역시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품고 살았고, 장성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품고 살았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선비의 고장 장성에서 배출한 큰 문화 예술계의 큰 인물이며, 사회적 지도자요, 스승이었다. 이제 우리 장성은 이런 자랑스러운 인물을 널리 알리고 존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장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아가면서 장성의 문화와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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