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후기에 있어서의 학풍의 변천을 논하라
이조후기에 있어서의 학풍의 변천을 논하라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6.20 10:17
  • 호수 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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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시험 답안은 재미있는 시험 문제에 달려 있다. 언젠가 <조선시대 지성사> 교과목 기말고사 답안지 채점하다 정말 재미있는 답안을 연거푸 만나 깔깔거린 적이 있었다. 문제는 둘이었다.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TV 토론회에 정도전 후보, 이이 후보, 영조 후보, 정약용 후보가 나와 새 정부의 리더십과 정치적 비젼에 대해 방송 토론하는 장면을 대화체로 써 보라는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대학생 새내기가 이황 선배, 이이 선배, 정제두 선배, 김정희 선배와 만나 호프집에서 인생 상담과 학문 상담을 하는 장면을 대화체로 써 보라는 문제였다. (그 전 학기에는 이황 교수, 이이 교수, 정제두 교수, 김정희 교수와 만나게 했는데, 교수에서 선배로 바꾸니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러다 문득 시험 답안이야말로 한 시대 지성사의 훌륭한 사료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후 언젠가 국회도서관에서 『국사요의』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한국사는 한국사인데 문답 한국사였다. 예상 문제와 모범 답안 모음이었다. 학생 답안의 생생한 현장은 없는 대신 교수 답안의 모범적인 표준이 담겨 있었다. 지은이 한우근의 서문(1953.1.31.)은 이 책이 한국사에 대한 핵심 논제를 선별해 일반인의 역사 교양과 수험생의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밝혔다. 

문제 1번 <국사와 세계사의 관련성을 논하라>에서 문제 113번 <민족의 해방과 대한민국의 수립을 논하라>까지 이 책에 수록된 여러 흥미로운 문제를 훑어보던 필자는 어떤 문제와 만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 문제는 94번, <이조후기에 있어서의 학풍의 변천을 논하라>였다. 이 문제의 답안은 1953년 현재 한국 학계에서 실학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문이라 하겠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작은 이렇다. 주자학은 이조유학의 핵심이 되었다. 철학적 사변과 명분론, 예론 등이 지도 이념이 되어 번쇄한 이론에 빠져 피폐해 가는 이조후기 사회에 대해 실용적 가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물의 유입은 이조후기 학자들의 견식을 넓혔고 청의 새로운 학풍이 국내 학자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 자아의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학풍이 대두하였다.

이제 본론이다. 새로운 학풍은 네 가지이다. 첫째, 주자학의 공리공담을 버리고 실제생활에 대한 반성에서 국민생활의 피폐를 광구하려는 실용의 학문이 일어났으니 유형원, 이익 등을 위시로 일련의 학자들이 배출되어 세상에서 이를 실학파라고 부른다. 

둘째, 북경에 사행하여 당시 전성기의 청대 문물을 목도하고 돌아온 자들은 제반 문물의 수입 모방을 주장하고 산업의 진흥을 꾀하기를 주창했으니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 일련의 학자가 있어 그를 북학이라 지칭한다. 

셋째, 선조대 이수광부터 단편적인 견문이 운위되어 서구의 자연과학적 지식과 천주교에 관한 견식을 논위하는 학문적 경향을 서학이라 통칭하여 이수광을 비롯하며 이이명, 이익, 홍양호, 정약용, 홍대용 등 여러 학자가 서양 문물에 대한 간접적인 견문을 소개하였다.

넷째, 청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고증학적 방법으로 역사, 지리, 언어, 금석학 등에 종사하는 학풍이 일어났는데,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연구한 한백겸을 위시하여 안정복, 이긍익, 신경준, 이중환, 정약용, 김정호, 김정희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끝으로 결론이다. 신학풍의 대두는 발랄한 시대적인 경향을 이루어 영정시대 편찬사업과 학자의 배출로 문운의 중흥을 일으켰다. 이들 학자 중에는 실제 실용의 학문에 종사하면서 고증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서양문물에 대한 견문도 갖추어서, 실학․북학․고증학․서학 등이 분립된 학파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적 경향으로서 대두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답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에 따르면 실학은 본래 북학이 아니고 서학이 아니고 고증학이 아니다. 실학은 범주상으로 조선후기 새로운 학풍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선후기 새로운 학풍을 모두 실학으로 치환하면서 실학․북학․서학․고증학 전체를 실학으로 간주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것은 실학의 지식사에 관한 중요한 물음이다. 

『국사요의』의 답안을 보면서 시험 답안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학생의 답안이 한 시대 문화사에 더 가깝다면 교수의 답안은 한 시대 지식사에 더 가깝다. 다음에 실학에 관한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면 어떨까. ‘한국사 개설서를 지은 4인의 학자를 초청하여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바람직한 역사 서술을 주제로 한국사 개설서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여러분의 사회와 이들의 토론을 대화체로 작성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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