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學)’의 정의에 드러난 정약용의 주희 비판과 신 학문 기획
‘학(學)’의 정의에 드러난 정약용의 주희 비판과 신 학문 기획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6.06 22:17
  • 호수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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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심경호

어떤 공부든 지향, 방법, 지형도가 분명하지 않으면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 Mind(지향), Method(방법), Map(지형도)의 셋을 3M이라 약칭할 수 있다. 지향과 관련해서는 지난 번 「나를 속이는 개별성에서 벗어나는 학문」에서 소회를 밝혔다. 지향과 연결되면서, 공부의 색채, 밀도, 내용을 좌우하는 것이 방법과 지형도이다.  

근대 이전 인사들은 관례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자학의 텍스트로 공부하는 경우, 주희의 ‘학’에 대한 정의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정약용은 ‘학’을 새로 규정하고 신 학문의 방법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과연 이러한 사람이 또 있을까? 

수년 전, 그간 조선의 학술에 관해 논문들을 발표해 오던, 현재 70대가 된 일본 학자가 정약용을 ‘박학자’라고 규정하는 것에 항의한 일이 있다. 박학은 인문학의 기본 수단이다. 하지만 그 분이 말한 박학은 ‘잡박한 지식학’이라는 뉘앙스를 띠었던 까닭에 나는 크게 분개했다. 혹시라도 정약용의 학문을 잡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정약용이 구사한 학문의 방법, 정약용이 마련한 학적 지형도를 살피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퇴계 이황,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의 학문을 계승했지만 사승(師承)을 들먹이지 않았다. 중국 학자의 경우, 후한의 정현, 남송의 주희, 명말청초 고염무와 모기령은 그의 선배이자 맞수였다. 당시 학문의 지배적 논거는 주희의 언설이었으므로, 정약용은 새 학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특히 주희를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극복의 방법을 ‘학’의 정의에서 압축하여 제시했다.  

『논어』를 펼치면 「학이(學而)」편, 그것도 제1장의 첫마디에 이러하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학(學)은 성훈(聲訓)에 의해 ‘본받을 효(斅=效)’나 깨달을 각(覺)으로 정의한다. 곧 ‘학’이란 앞사람을 본받는 일과 스스로 깨닫는 일을 포괄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성훈이란 어떤 문자를 그것과 같은 음이나 아주 비슷한 음의 문자로 대체하여 훈해(풀이)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어원속 해설과 다르다, 성훈은 통용의 세계관이나 자연관을 배경으로 하되 그것을 언술하지 않고 한 사상(事象)을 즉각적이고도 직관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이다. 서구 논리학의 ‘피정의항(被定義項) = 종차(種差)+유개념(類槪念)’이라는 정의법과 완전히 다르다. 

주희의 신주(新注)는 종래의 풀이를 계승하되 『맹자』의 ‘선각자가 후각자(아직 깨우치지 못하여 뒤에 깨우칠 자)를 깨우쳐 준다[先覺覺後覺]’는 말을 끌어와 재정의했으며, 깨우침의 내용을 ‘명선복초(明善復初)’라는 인간 본성의 회복 문제로 한정했다. 『논어집주』에 이러하다. 

學之爲言은 效也라. 人性皆善이나 而覺有先後하니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라야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라. (전통문화연구회 현토 참조) 

배운다는 말은 본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의 본성은 다 선하지만 깨우침에는 선후가 있어 후각자는 반드시 선각자의 하는 것을 본받아야 곧 선함이 분명해지고 처음의 선함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정약용은 1819년 『아언각비(雅言覺非)』 서문에서 성훈의 훈해 방식을 차용하되 ‘학’을 완전히 새로 정의했다. 

學者何? 學也者, 覺也. 覺者何? 覺也者, 覺其非也. 覺其非奈何? 于雅言覺之爾. 

‘학(學)’이란 무엇인가? ‘학’이란 것은 ‘각(覺)’이다. ‘각’이란 무엇인가? ‘각’이란 것은 잘못을 ‘각(깨달음)’하는 것이다. 잘못을 깨달으려면 어떻게 하는가? ‘아언(雅言)’을 준거로 삼아 깨달을 따름이다. 

정약용의 ‘학’ 정의는 대담하고, 현실적이며, 포괄적이다. 철안이라 간주되었던 정의를 폐기했기에 대담하고, 삶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류를 문제 삼았기에 현실적이며, 실천이성의 영역만이 아니라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의 영역까지 시야에 넣었기에 포괄적이다. 이 정의는 언어사회학의 명저 『아언각비』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학문에 관통되어 있다.      

주희의 정의는 남송 때 여러 학파들이 세력을 갖춘 학단을 형성하고 경쟁한 사실 속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도학의 방법을 천명한 것이다. 주희의 강학처 무이정사를 가서 보면 그의 학문 방법의 한 특징을 잘 추상할 수 있다. 많은 학도들이 일정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전수받아 지식을 습득하고 일상에서 숙습 정도를 인가받았던 것이다. 

정약용은 공공연하게 학단을 이끌 수 없었다. 강진에서의 작은 모임은 주희가 거느렸던 집단과는 규모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오늘날 여유당이 근사하게 복원되어 있지만, 마재로 귀환한 이후 정약용은 큰 형님의 분재 몫에 비해 형편 없이 작은 밭을 경작하고, 팔당 부근에서 자제들이 인삼을 가꾸어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강학을 할 수 없었다. 고독한 투쟁이 ’아언을 준거로 인식과 실천의 잘못을 깨닫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했다. 그 기획은 상세한 지형도를 갖추었으므로 풍부한 유산을 남겼다.  

정약용의 유산에 대한 평가는 정약용 스스로 규정한 ’학‘의 정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언을 기준으로 삼는 것’과 ‘잘못을 깨닫는 것’은 결국 동일한 활동의 양 국면이 아닌가? 그 둘 사이에 동어반복의 혐의가 없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아언’의 내용과 특성을 밝혀야 하고, ‘아언을 기준으로 삼은’ 방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잘못으로 판명된’ 어휘나 개념이 인간본성, 역사문화 그리고 과학분야의 어떠한 국면을 심각하게 반영하고 인간 정약용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문제적인 것’으로서 부각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왜 정약용의 목소리에 기울이지 않고 정약용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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