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설날 아침에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2.02.06 22:42
  • 호수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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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다산연구소가 시 두 편으로 인사드립니다. 다산의 「새해 집안 편지를 받고」와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를 띄웁니다. 

 

1. 「새해 집안 편지를 받고」

 

해가 가고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다가 / 새소리 날로 달라 봄인가 싶네

비 오면 고향 생각 등넝쿨처럼 얽히고 / 겨울 지낸 병 진 이 몸 대나무처럼 여위었네

세상일 보기 싫어 늦게야 방문 열고 / 오는 손 없을 줄 알아 이불 더디 갠다오

무료함 없애는 법 아이들이 알았는지 / 의서에 따라 술 담가 한 단지 부쳐왔네

 

천릿길에 하인 아이 가져온 편지 받고 / 초가 주막 등잔 아래 홀로 긴 한숨 짓누나

어린 아들 학포(학유)는 아비 탓했건만 / 병든 아내 옷 꿰매 보냈으니 아직 남편 사랑하네

내 식성 생각해 멀리 찰밥 싸서 보내고 / 굶주림 면하려고 철투호를 팔았다니

답장 바로 쓰려 하니 달리 할 말 없어 / 뽕나무나 수백 그루 심으라 채근했지

 

新年得家書

歲去春來漫不知, 鳥聲日變此堪疑. 鄕愁値雨如藤蔓, 瘦骨經寒似竹枝. 厭與世看開戶晚, 知無客到捲衾遲. 兒曹也識銷閒法, 鈔取醫書付一鴟. // 千里傳書一小奴, 短檠茅店獨長吁. 稚兒學圃能懲父, 病婦緶衣尙愛夫. 憶嗜遠投紅穤飯, 救飢新賣鐵投壺. 旋裁答札無他語, 飭種檿桑數百株. 

 

― 다산이 장기에서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긴 이듬해(1802) 정초에 집에서 보낸 약술과 편지를 받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의 시다. 그때 학가(學稼)·학포(學圃)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학포는 둘째이다. 어린 아이들을 놓아두고 천리 밖에 귀양 사는 아버지를 둘째가 탓했건만 아내는 남편 옷을 꿰매고 찹쌀 밥거리를 챙겨 보내는 정경이 눈물겹다. 뒤에 학가는 학연(學淵), 학포는 학유(學游)로 이름을 바꿨다. <참조: 박석무·정해렴 편역, 『다산시정선』, 현대실학사>

 

강진 들머리 주막집 뒷방(사의재)에서 읍내 아이들 모아 글을 가르치는 불우한 처지의 다산. 그 고난 속에서 그는 위대한 학문의 길을 열었습니다. 시대 현실과 개인의 삶에서 고난은 항상 닥칠 수 있겠지만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주목될 일입니다. 오늘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재앙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참극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업, 등교를 못하는 학교, 생이별하고 지내는 가족, 부모의 상을 치르지 못하는 자식, 못가진 자의 고통, 참으로 불행한 참상이 다산의 불우를 넘다시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희망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뽕나무 수백그루를 심으라’는 다산의 채근을 되새기면서.

 

2. 우리 연구소도 근년에 매우 힘들었습니다. 사업과 경영 모두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연말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수원시내 경기문화재단 건물에 있던 사무실을 근방의 허름한 건물로 옮기고 현판 둘을 달았습니다, 「茶山硏究所」와 「경기실학연구센터」라고.

센터는 경기도가 경기실학의 연구와 진흥을 위해 공모해서 붙인 위탁사업명입니다. 이로써 금년에는 원래의 다산연구소 활동과 센터라는 위탁사업을 아우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연구소와 센터는 별도의 기획과 채산으로서 엄격히 구분되지만 센터 사업의 내용도 앞으로 보고드릴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새로운 계기를 맞은 다산연구소는 다양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선 메일링 서비스 체계를 바꾸어가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박석무 이사장이 전담해 온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월요일)를, 새해를 맞아 「풀어쓰는 실학이야기」로 바꾸고 필진도 확대하여 폭넓은 실학적 내용을 다루어 나가겠습니다. 「다산포럼」(화)은 종전처럼 운영합니다. 아울러 앞으로 실학에 대한 학생과 시민들의 질문을 전문가가 쉽게 풀어 답해주는 「실학문답」이라는 창을 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실학 인문을 제공하도록 새로운 준비로 새해를 맞겠습니다. 지금의 30여만 회원을 넘어 더 너른 광장을 만들도록 꿈꾸겠습니다.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 싹이 /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서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1926~2017), 『황사현상(黃沙現象)』, 민음사)

 

글쓴이 : 김시업 (다산연구소‧경기실학연구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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