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의 사표 동방사현
선비정신의 사표 동방사현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1.11.22 10:24
  • 호수 8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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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리학의 계보를 따지면 정몽주에서 시작하여 길재로, 길재에서 김숙자로, 그리고 김숙자의 아들인 점필재 김종직으로 이어진다. 김종직은 정여창과 김굉필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길렀고, 김굉필은 다시 정암 조광조라는 개혁가를 키웠다. 이언적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인 손중돈에게 학문을 익혔는데 손중돈은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운 사람이다.

1568년 선조 1년 사림(士林)과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을 문묘에 종사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에 명예와 이욕을 구하지 않고 움직일 때나 고요하게 거처할 때나 반드시 예법에 따르며 공경에 이르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진실로 오래도록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데 힘을 쌓았습니다라고 했다.

당시 사림과 성균관 유생들은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을 동방사현이라 부르며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들이 문묘에 배향된 것은 40년 뒤인 1610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3년째 되는 해였는데 1570년에 사망한 퇴계 이황과 함께였다.

조선의 사림은 성종 대에 이르러 세조 때 막강한 권력을 갖게된 공신과 훈구파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영남지방의 사림을 대거 발탁하며 이들이 새로운 신진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사용된 이름이다.

사림은 성리학을 신봉하고, 무엇보다 절의와 기개를 제일의 가치로 삼았다. 정여창과 김굉필은 네 살 차이지만 매우 돈독한 벗으로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함께 찾아가 그에게 학문을 배웠다.

연산군은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성종실록에 삽입한 김일손을 죽이고 이미 죽은 김종직을 무덤에서 꺼내 목을 베는 부관참시를 하는 무오사화(1498)를 일으켰다. 정여창은 김일손과 매우 가까운 벗이었고, 김종직의 수제자였기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연산군은 정여창에게 장형 1백 대와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보냈고, 그에게 수모를 주기 위해 관청의 불을 지피는 화부의 노역을 명했다. 정여창은 유배 7년 째 되던 1504455세로 숨을 거두었는데 연산군은 그해 9월 갑자사화를 일으켜 정여창을 부관참시하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부를 정도로 소학을 배우고 실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소학의 핵심은 바로 자신을 수양하고 절의와 기개를 지키는 일이다. 오로지 소학을 배우고 실천하는데 전념했던 김굉필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 벼슬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로 붕당을 만들어 임금의 정치를 비난하거나 시국을 비방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곤장 80대와 함께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2년 뒤 다시 전남 순천으로 유배되었는데 갑자사화 때 죽음을 면치 못했다.

조광조는 희천으로 유배를 온 김굉필에게 2년 동안 성리학을 배웠는데 이 때 그의 정치관과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었다. 정암 조광조는 중종 때 진사시에서 장원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한 뒤 주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三司)에서 일하며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반정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들의 강한 견제를 받았다.

결국 1519년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유언비어와 반정공신들의 모함으로 화순 능주로 유배되었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퇴계는 조광조가 성리학의 도리를 크게 일으킨 사람이라고 하였고, 율곡은 도학적 실천과 의리를 임금에게 권한 사람은 조광조가 최초라고 했다. 판의금부사를 지낸 이언적은 1541년 윤원형 등의 모함으로 평안도 강개로 유배되어 6년 만에 죽고 말았다. 유배와 사약을 받은 동방사현의 삶은 한마디로 죽음 앞에서도 의리와 기개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학에 어진 사람은 흥망과 성쇄로 절개를 고치지 않고, 의로운 사람은 보존과 멸망으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 뜨내기들이 유력 대선후보에게 줄을 서는 꼴불견이 가관이다.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도 없이 이당 저당을 옮기는 자들도 허다하다. 그들에게 절의와 기개는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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