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0.10.11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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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에서 우리나라 최고령 현역의사로 활동했던 한원주 과장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한다.

한과장은 1926년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부친 한규상씨와 어머니 박덕실씨 사이에서 태어나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었고, 이후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내과 전문의 자격을 얻은 뒤 귀국해 개업의로 근무했다.

4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개인병원을 정리하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쳐 왔으며, 2008년에는 의료선교의원에서 은퇴한 뒤 남양주시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을 맡아 직접 환자를 진료했다.

한과장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10여 곳이 넘는 사회단체에 기부했으며 2017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한 제5회 성천상 상금 1억 원도 전액 기부했다고 한다. 한과장은 평소에 "사랑, 관심, 배려만으로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해왔으며 마직 남긴 말은 요양병원 관계자들에게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였다고 한다.

104일에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1세대로 꼽히는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타계했다. 이교수는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수료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듬해인 1958년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를 창설함에 따라 교수로 부임하였다.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한국정근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초창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 때에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1990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도 호주제 폐지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 여성 50% 할당제 등에 기여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02년 스크랜튼 선교사가 세운 삼일여학교에서 근대적 여성교육이 시작되면서였다. 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 여성해방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인 나혜석이 바로 삼일여학교 1회 졸업생이다.

나혜석은 유학생활을 통해 근대지식과 문화를 경험해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여권신장에 노력하는 한편 1919년 일본 유학 시절 3.1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325일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나혜석과 함께 졸업한 차인재는 구국민단에 참여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보낸 독립신문·대한민보 등의 독립사상에 관한 신문을 배포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박충애와 이선경, 임순남, 최문순 등의 여성들이 모두 삼일여학교 출신의 민족운동가이다.

조선시대에 여성들은 남편이 죽더라도 재혼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면 그 아들이 과거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한 제도 때문이었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여성부가 신설되는 등 최근에 와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법과 제도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녀의 임금 격차는 적지 않고, 고위직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것이 사실이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보이지 않는 여성차별은 사회갈등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한원주과장과 이효재교수 그리고 나혜석과 같은 여성들은 당시 남성들도 받지 못한 신교육을 받아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남성들에 비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혈연으로 만들어진 우리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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