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 성립?
[기자수첩]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 성립?
  • 이미선 기자
  • 승인 2020.04.26 21:25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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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이른바 n번방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 우리나라에서는 20181월 말 서지현 검사가 과거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밝히면서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미투 운동 이후 전국 209개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했다.

또한 최근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21대 국회는 강간죄부터 개정하라고 촉구하며 수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시민들이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법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성폭력·성차별 근절을 촉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대 국회는 계속되는 파행과 직무유기로 성폭력 문제해결을 방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성폭력 패러다임을 바꾸고 성평등한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강간 당시 가해자가 가한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관계가 이루어졌더라도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따라 강간죄의 성립 여부가 결정된다.

피해자들은 성폭력을 당했어도 우리 법이 인정하는 성폭력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폭행 또는 협박 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무고혐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무고혐의를 받을 경우 가해자들은 법을 악용해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를 하는 경우가 발생해 선뜻 신고하기 조차 꺼려한다.

폭행이나 협박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강간죄를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점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확연히 다른 남(), ()의 생각차이

30대 연인의 같은 날 밤의 이야기다.

남자친구 A 씨에게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 B , 이별 통보 후 A 씨가 B 씨의 집을 찾아갔다. B 씨는 다시 만나자는 A 씨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였고 술에 취한 A 씨는 막무가내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B 씨는 싫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저항하지 못했다.

여자친구 B 씨에게 헤어지잔 통보를 받았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먹고 B 씨의 집을 찾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오랜 시간 다툼 끝에 서로 지쳐 A 씨와 B 씨는 나란히 누워 함께 밤을 보냈다.

한 공간에서 같은 날에 일어난 일이지만 서로의 기억은 다르다. 여자친구 B 씨가 남자친구 A 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였고 A 씨는 억울하다며 B 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같은 상황에서 남녀가 받아들이는 생각의 차이는 너무나 다르다.

또한 4년 전 40대 남성 A 씨는 채팅 어플로 만난 30대 여성 B 씨를 모텔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B 씨가 자발적으로 모텔로 들어간 점이 드러나면서 무혐의 처분됐다. 그러자 A 씨는 역으로 B 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3번의 재판 끝에 B 씨는 무죄를 인정받았다.

B 씨는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A 씨가 강제로 눕혔다고 진술했고

A 씨는 B 씨가 거부한다고 했지만 스킨쉽을 시도하자 거부하지 않기에 받아들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장교 2명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폭행과 협박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 이유였다.

폭행 또는 협박이 없다면 양쪽의 진술이 증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강간죄를 성립하기에는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서도 20183월 우리 정부에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피해자라는 것도 억울하지만 그들은 강간죄를 성립시키기 위해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 왜 거부하고 박차고 나오지 않았는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강간죄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폭행과 협박을 입증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따라서 과거 남녀가 불평등한 유교적 사고가 남아있는 남성들의 성인지도의 변화와 함께 강간죄에 대한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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