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깨달음의 날 4월28일 대각개교절…
큰 깨달음의 날 4월28일 대각개교절…
  • 장유이 기자
  • 승인 2019.04.29 14: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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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장성교당 김기성 교무를 만나다
원불교 장성교당 김기성 교무
원불교 장성교당 김기성 교무

428일은 원불교의 대각개교절이다

이는 원불교의 개교를 기념하는 날로 원불교 최대의 경축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시된 종교로는 유일하게 천주교, 기독교, 불교와 함께 4대 종교로 손꼽히는 원불교는 일제 암흑기에 많은 종교가 생겨났으나 대부분 쇠퇴한 반면 꾸준한 교화활동으로 오늘날 100만여 신도를 모을 만큼 성장하였다.

대각개교절을 맞아 지난 23일 원불교 장성교당을 찾아 김기성 교무를 만났다.

그는 원불교에 대해 생소해 하는 필자에게 대각개교절에 관한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1916428일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少太山 朴重彬 大宗師)가 탄생한 날이 아닌 대종사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날입니다.

박중빈 대종사는 영광 출신으로 7세부터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등의 자연현상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가 11세부터는 의문을 풀어줄 산신령과 도사를 만나기 위해 온갖 고행을 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된 구도고행 끝에 마침내 대종사의 나이 26세인 1916428, 큰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대각개교절의 배경이자 원불교 창시의 배경입니다. 대종사는 깨달음 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놓으며 원불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원불교, 민생에 스며들다

개교 후 9명의 제자들을 만나 1917년에 저축조합을 만들게 됩니다. 오늘날의 협동조합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운영하여 그곳의 이득금과 당신의 사재를 털어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하여 논을 조성하고, 그 후 여러 사업을 통하여 교단 창립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 후 원불교 교서를 만들고자 전북 부안의 변산에 거주하며 수도생활을 하고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때 만난 제자들이 더 큰 세상에서 교화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북 익산의 현재 원광대 옆자리에 총본부를 건설하게 되고 거기서 신도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여러 사업들을 꾸려서 교화활동을 하고 1943년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원불교 최대의 명절

대각개교절에 우리 원불교는 41일부터 55일까지 대각개교 경축기간으로 정하고, 장성교당에서는 법잔치를 통하여 특별기도 및 기념식, 성지순례를 하고 은혜잔치를 통하여 장성중, 장성여중 장학금 전달, 지역 경로당 어르신 과자공양, 이웃종교 및 기관 일부 대각떡 나누기를 실행중이며 놀이잔치를 통하여 사물놀이로 경축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대각과 공동생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뿌리가 불교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아마도 창시자인 대종사가 부처의 법으로 공부를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오해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부처의 법으로 시작을 한 것이 아니고, 대종사가 스스로 도를 깨치고 보니 진리는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 ·() ·() 3교의 경전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의 성서와 동학의 동경대전까지 경전들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특히 불교의 <금강경(金剛經)>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일치함을 깨닫고 근본 진리를 밝히는 데는 불법(佛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여 내가 스승이 없이 도를 깨달았으나 마음에 스승을 모신다면 석가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라며 불교와의 인연을 정하고 그 후에 불교의 사상을 많이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원불교와 불교는 다른 점이 궁금하시죠?

원불교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대중성과 시대성과 생활성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속세와의 연을 끊고 사는 반면 원불교는 세상과 함께 어울러서 민가에서 생활합니다. 시대에 맞게 대중들과 어울러서 함께 생활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극락이 사후세계를 말한다면 우리 원불교가 말하는 극락은 죽어서 가는 것 보다는 현세에 지금 있는 이 곳과 지금 이 시간이 바로 극락이고 지옥이라는 현실 극락과 현실 지옥을 말합니다.

 

-4()을 보답하는 삶

대종사가 신앙의 대상인 것으로 오해를 하시는데 대종사는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을 신앙의 대상이며 이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법신불(法身佛)이란 궁극의 진리를 말하는 것인데 이 진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을 모르는 중생들을 위해 일원상(O)으로 진리를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사랑, 불교에서는 자비를 이야기 하듯 우리 원불교에서는 은혜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4(四恩) 곧 천지은(天地恩), 부모은(父母恩), 동포은(同胞恩), 법률은(法律恩) 이렇게 4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법신불 일원상에 입각하여 4(四恩)을 실천하는 것이 대종사가 펴낸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원불교와의 인연은

모태신앙입니다. 어머니가 시집오시기 전에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골마을에서 사셨는데 저의 외증조모를 따라 10여리를 걸어 다니며 신앙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4형제 모두 원불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저는 교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제가 원불교학과에 가서 교무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정말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허락하셨고 지금은 부모님 모두 열심히 원불교 신앙을 하고 계십니다.

 

-왜 교무가 되었냐고요?

사춘기 시절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해답을 원불교의 가르침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모두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해 드리고자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교무가 되기 위해선 교무님의 추천을 받아야하는데 저의 추천교무님께서 저더러 세계의 큰 지도자가 되어보거라하고 큰 희망을 주셨는데 그 또한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요즘 관심분야와 활동은

요즘 고민하고 있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환경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친()환경이었다면 이제는 필()환경입니다. 환경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것이죠. 환경문제는 후손에게 물려주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 접한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종이컵 안 쓰기, 자기 컵 사용하기, 시장가방 사용하기 이렇게 세 가지를 정해두고 우리 교당에서는 교도님들과 상의하여 작년부터 종이컵을 없앴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해 하던 교도님들도 이제는 마을회관까지 가서 실천하여 이에 지역민들께서도 많이 동참하여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시장가방을 제작하여 교도님들에도 나누어 드리고 교도님들과 인연이 있는 분들에게도 나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평화로운 현실 극락이 되도록 교도들에게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4(四恩)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장성교당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기성 교무의 수행과 실천을 보며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기도해본다.

 

김기성 교무는 1993-1996 원불교 군산교당 근무, 1997-2001 영광 영산선학대학 근무, 2002~2007 고창교당 근무, 2008~2011 원불교원성교당 근무 후 2014년부터 장성교당에 부임해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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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수 2019-05-09 16:03:06
김기성 교무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멋지십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