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 문영수 전교를 만나다
향교 문영수 전교를 만나다
  • 장유이 기자
  • 승인 2019.04.02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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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봉사들이 이제와서 보니 저를 위한 것이더군요”

"지난 26일 향교 유림회관에서 만난 문영수 전교는 자신이 아직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낮은 자세로 임한 것 밖에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필자에게 음료를 권하고, 먹을 것을 권하면서도 그 안에서 예를 갖추는 어른. 그 겸손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향교 문영수 전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난으로 인한 학업중단. 마침내 석사 취득

황룡면에서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희 집안 형편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당장 먹고 살 방도를 찾는 것이 먼저 되어야하는 상항이었기에 결국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만이 제 삶을 바르게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무살이 넘은 나이에 검정고시를 치르고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그 후 방송통신대에서 학사를,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하였습니다.

 

나의 철칙

항상 학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중학교를 그만둔 후에도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인도의 간디선생의 비폭력주의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 즉 항상 남을 섬기고 도와주려는 것은 저의 철칙이었는데 간디선생의 비폭력주의 원칙은 이러한 저의 삶의 지침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더욱 겸손하고 상대를 섬기는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중학교를 중단하고 잠시 태권도 사범으로 1년정도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저는 태권도의 기술보다는 정신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운동을 하되 상대가 폭력을 행사한다고 하여 무조건 폭력으로 그를 대하지 말 것, 항상 낮은 자세로 남을 섬기고 도와주는 입장이 될 것. 항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독서는 나의 힘

독서는 저의 삶과도 같습니다.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중단된 학업을 독서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틈나는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죠. 제가 좁은 곳에 있지만 저의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것은 독서라고 생각했기에 닥치는대로 읽었습니다. 독서습관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고요. 그것이 저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31녀를 두었는데 아이들이 어릴적 새벽에 소변을 보러가다가 아버지가 새벽 한 두 시까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들도 따라서 세수를 하고 와서 책을 읽고는 했습니다. 다행히 4남매 모두 착실하게 잘 커주어서 딸은 사업중이고 아들들은 공직에 있습니다.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한 것

남을 위하는 자세를 갖추고 살고자 하니 자연스레 봉사단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진원에서 의용소방대장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열심히 일한 덕분에 군 연합회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8년도에는 자유총연맹장성군 지부장 제의까지 들어왔습니다. 사회단체장은 정말 중요한 임무입니다. 사회단체장에 따라 윗선의 물줄기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며 거절을 하고 왔는데 지금껏 저의 봉사활동하던 모습이나 조직을 이끌어가는 모습 등을 보니 이 자리를 잘 맡아서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렇게 자리를 맡기고자 하는 것 인데 왜 거절하냐고요. 그래서 결국 제가 맡아 이끌게 되었고 그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재는 장성향교 전교를 맡고 있는데 이번에 전라남도 향교 협의회장을 맡게되어 취임식은 생략하고 425일부터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군민과 향교조직원들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향교를 활성화하는데 제 역량을 바쳐 보답하고자 합니다.

남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봉사들이 모이고 모여 저를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해 주었으니 이렇게 돌이켜보면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더군요.

 

특이한 이력

유년시절을 황룡에서 보내고 20살이 넘어 진원면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황룡면 출신인데 진원면 조합장으로 선출되어 일하였던 것을 두고 높이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마도 혈연과 지연으로 맺어진 지역적 특성이 큰 곳이기에 다른 고향 출신이 선출된 것이 의아하신가 봅니다. 달리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항상 봉사하며 남을 섬기는 자세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이러한 것들을 꾸준히 지켜보시고 저를 선택해 주신듯합니다. 그리고 조합장으로 선출되고서는 정직과 신뢰를 신조로 삼고 공사, 인사, 금전을 전부 깨끗하게 운영하였습니다. 선비의 고장 장성에서 청렴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 모습이 조합원들에게 인상 깊으셨는지 재선출되어 8년 연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조합장 임기를 마치고 나올 때에는 조합원들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소정의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장학금 기부는 지금도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유학(儒學)

유교를 접하게 된 것은 10여년정도 됐습니다. 조합장을 그만 둘 무렵 책을 보면서 유교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전에도 사서삼경을 집에 두고 틈나는 대로 읽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습니다. 유학을 공부하면서 그 중 제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입니다. 사람의 성품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이고 이 성품을 따르는 것이 도()고 이 도()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 본성이라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하는 것인데 결국 교육을 통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이 인의예지를 찾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자주 있는데 그럴때도 이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이 지식 채우는 교육이 아니라 인의예지를 갖추어가는 과정이기를 바라면서 강의를 합니다. 강의는 무료로 하기도하고 강의료를 받게 되면 모아서 장학금으로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경북에는 도산서원이 있고 충청도 논산에도 유교문화원이 설립 중에 있습니다. 그런 지역들처럼 장성도 호남지역 유림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 전교로서의 저의 꿈입니다. 장성은 선비의 고장입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숨쉬며 생활했던 곳이고 많은 의병들이 나온 곳이므로 이곳 장성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미래를 열어가는 후진들에게 유교라는 위대한 사상을 가르치고 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전교로서의 꿈입니다. 이제는 전남향교협의회장도 되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고 실현시켜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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