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17일 방송된 모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3선 도전’, ‘팔로워 수’, ‘직원 격려용 간식’ 등을 언급해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우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역 정치인이 인기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자체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래도 괜찮은 건가?’, ‘뭐,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라는 생각들을 하게 했을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평소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한 MC가 “3선 도전 당내 경선을 앞두고 정치인이 예능 프로에 나오는 것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판을 깔았고, 박 시장은 “예전에 예능에 출연했을 때 내 예능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자진해서가 아닌 ‘권유’와 ‘섭외’를 통해 출연을 하게 됐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심지어 “신문 안 봤느냐, 여론조사에서 이미 게임 끝났더라”라며 수위 높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또 “나보고 좌파냐 우파냐 묻는데 나는 시민파다” 라거나 “내 SNS 팔로워 수가 정치인 가운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많은 240만 명이다”, “직원들 격려 차원에서 피자를 간식으로 보내는데 이제는 직원들이 피자가 지겹다고 한다” 등 예능감과 홍보성 멘트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듯 한 이야기들도 나왔다.
친근한 이미지, 의혹 해명 등을 위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나름 의도한 바의 효과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박 시장의 예능 출연과 위 발언들을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6.13)’ 180일 전인 지난해 12월 15일부터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운동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86조 5항에 따르면, 선거운동규제가 적용되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즉 2017년 12월 15일부터 2018년 6월 13일까지 지방자치단체장 및 교육감 등 입후보예정자의 홍보나 선전이 제한된다. (법령에 규정된 경우, 특정사업 추진 동의를 얻기 위해 관련주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경우, 집단·긴급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경우 등은 허용된다)
즉 지방자치단체(교육청)의 사업계획·추진실적 그 밖에 지자체의 활동 상황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시설물·신문·방송 포함, 예를 들어 장성21세기 등)을 발행·배부 또는 방송하는 행위가 금지되는 것이다.
아울러 공직선거법 제86조 6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적 행사 등 참석 제한 등’에 관해 명시하고 있다.
즉 근무시간 중에 공공기관이 아닌 단체 등이 주최하는 행사 참석이 제한되며, 이에 대한 사례 예시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의 기간 중에 지각·외출·조퇴를 신청하여 공공기관이 아닌 단체 등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행위」를 들었다.
그러면 근무 시간이 아닐 때는 어떤가.
지난달 말 오전 11시에 시작된 모 단체 회장단 이취임식 행사장에 유두석 군수가 12시를 넘겨 등장했다. 사회자는 “군수님이 오셨다”고 했고, 군수는 “12시 지났으니 선거법 위반 아니지요?”로 시작하는 축사를 했고, 감사패를 받고, 축하떡을 자르고, 기념촬영도 하는 등 이후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화려한 식전 공연, 자세한 내빈 소개, 이·취임사 등 당초 예상보다 행사 시간이 지연돼 마침 지나가던 군수가 신임회장 격려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행사 일정표에도 12시 이후 군수 등장 시간과 행사 내용이 버젓이 나와 있는 걸 보니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보니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덕분에 2백여 명의 내·외빈은 12시 반을 넘겨서야 행사장 바깥에 준비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군수를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은 오후 업무 시작을 제시간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군수가 이 행사에 참석한 시간과 일정이 군수 업무일지에는 뭐라고 기재되어있을까.
점심시간은 근무시간이 아니라 괜찮나? 그렇다면 관용차를 타고 오지 말았어야 했고, 비서 수행을 받아서도 안 되는 거였다.
선관위는 뭐 하고 있나?
이래서 현역 프리미엄과 꼼수는 한 끗 차이라고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