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고구려인의 기상과 용맹함이…
아! 고구려인의 기상과 용맹함이…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7.06.26 09:50
  • 호수 6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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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해변의 상징물
다롄에서 버스는 달리고 달리다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왔지만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던 백두산 천지다. 불과 열흘 쯤을 남겨두고, 천지를 간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 아무 망설임도 없이 여권을 복사해 보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는 맘 맞은 선배와 신문사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에게도 갑작스런 여정을 제시했더니 흔쾌히 동행을 결정해주었다.
새벽에 광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11시 20분 다롄(大連)으로 가는 남방항공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다롄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1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다롄은 인구 480만 명의 도시로 해안선의 길이가 1900km나 되는 곳이다. 다롄은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무역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남만주철도와 같은 사회 간접시설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조선소가 있으며, 내연 기관, 정유, 베어링 관련 17개 업체가 다롄에 위치해있다. 다롄은 목재와 금속을 처리하고 그 구성 성분을 분해하고 합치고 분배하는 일과 관련하여 선도적인 공장들이 무수히 많은 곳이다. 지금은 I.T와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롄의 해변을 따라 높이 솟아 있는 고급 아파트가 줄을 서듯 계속 이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부산의 광안리 해변을 연상하게 했다.
다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상하이(星海) 광장으로 갔다. 이 곳은 다롄시 창시 100주년을 맞아 1997년 만들었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면 광안리 대교를 연상하게 하는 긴 다리가 있고, 광장 주변에는 높은 빌딩들이 줄을 서있다.
다롄의 기온은 찜통처럼 더웠고, 잠시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손을 뻗으면 신의주가 닿을 듯
단둥의 끊어진 철교에서

끊어진 다리, 신의주가 건너에 있다.
다롄에서 단둥(丹東)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네 시간이 지나 단둥에 도착했다. 단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이 찾은 곳은 옛날 신의주로 가는 끊어진 철교였다.
6.25때 미군의 폭격에 의해 신의주 쪽에 다리가 무너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리를 복원하지 않고, 새로운 다리를 건설한 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다리 건너로 신의주가 보이고, 어떤 건물엔 밤늦게까지 불을 켜 놓았다.
중국과 북한과의 교류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이곳 단둥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개발로 무역 등 경제교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단둥에는 북한에서 넘어온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데 북한의 정보요원들이 곳곳에 있으니 밤에 혼자서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삼가라는 가이드의 말은 왠지 공포감을 주는 것 같았다. 단둥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압록강으로 갔다.
압록강에서 만난 북한 인민군
우리 돈으로 한사람 당 3만원을 주고, 작은 보트를 빌려 타고 압록강을 둘러보았다. 3만원이면 사실상 바가지요금이다. 하지만 얄팍한 가이드의 꼬임에 넘어가 여행 패키지에 포함된 유람선 대신 작은 보트를 탔다. 조선족인 가이드는 유람선은 사람이 다 타야 출발하는 것이라서 언제 배가 뜰지 모르니 작은 보트를 타야한다고 버스 안에서 거의 열 번도 더 강조를 했기 때문이다. 3만원 속에는 가이드가 챙기는 소개료가 적어도 1만원은 될 것이다.
보트를 타고 북한의 인민군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 아래까지 가서 그들의 얼굴을 불과 10여 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못 먹어서일까? 아직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서 밝고 기운찬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난하고 굶주렸던 60년대 시골 청년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인민군이 카메라를 보자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했다. 가이드는 수없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난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다.
압록강이 운반한 흙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 위화도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속하고, 북한 주민들이 농사는 물론 양과 소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위화도 농촌의 전경
60년대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 그대로 보였다. 누렁소가 풀을 뜯고 있고, 아낙네는 압록강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1388년 이성계가 이곳에서 회군을 단행함에 따라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비롯된 역사적인 곳이다.
위화도를 바라보며 통일이 되면 다시 위화도에서 압록강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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