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후에 결혼제도는 어떨까?
50년 후에 결혼제도는 어떨까?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7.02.06 10:34
  • 호수 6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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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미혼남녀 1천 명의 혼인 및 이혼 인식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에 의하면 남녀 2명 중 1명은 10년 후 기존 결혼 형태보다 사실혼(동거)의 형태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46.9%는 10년 후 동거가 결혼보다 더 보편적인 형태가 것으로 예측했고, 기존 결혼이 여전히 가장 보편적인 혼인 형태일 것이라는 견해는 33.9%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미혼 남녀들은 미래 혼인의 모습으로 계약 결혼(9.1%), 졸혼(8.1%) 등을 그렸 는데, 졸혼이란 이혼과 달리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한 채 부부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 념으로, 일본에서 나타난 새로운 풍속이다.

한편 결혼하기 전에 계약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많았는데 부부생활 수칙(18.8%), 양가집안 관련 수칙(16%), 재산 관리(15.7%) 등이 있었다.

또한 절반 이상(64%)은 혼인신고를 '결혼식 후'에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결혼에 대한 확신이 적기 때문이며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 를 하는 이유는 혼인증명이 필요한 '전세자금 대출'(37.9%)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이혼이 불가피한 원인으로는 '가족과의 갈등'(21.6%)이 가장 많이 꼽혔고, '외도'(19.8%) 와 '가정 소홀'(16.8%) 그리고 '성격 차이'(16.6%) 등이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부부가 모든 사회질서의 기본이었고, 따라서 결혼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였다. 점필재 김종직은 영남 사림의 영수로 꼽히며 김굉필, 정 여창 등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퇴계 이황은 조선의 성리학 계통을 “정몽주·길재·김 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라고 했다.

김종직의 스승이자 아버지인 김숙자는 서른한 살이던 세종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인 재를 중히 여겼던 세종대왕은 서른여섯 살의 청년 김숙자를 사관(史官)에 임명하려고 하 였는데 사헌부에서 이를 반대하였다.

김숙자는 뛰어난 학문과 청렴한 삶에 비해 일생동안 벼슬이 미미하였고, 66세에 겨우 성균관 사예(정4품)에 임명되었다. 그 이유는 김숙자가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것이었다.

김숙자의 할아버지 김은유에게 같은 고을에 사는 한변이 찾아와 나이든 딸이 있는데 혼 사를 치르지 않으면 중국에 공녀로 보내게 생겼으니 손자와 결혼을 시켜달라고 하였고, 딱한 사정을 들은 김은유가 손자와 한변의 딸을 결혼시켰다.
 
그런데 한변이 신분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 김숙자의 아버지 김관이 아들의 장래를 망칠 수 없다고 판단해 이혼을 하게 하였다. 한변은 사위가 과거에 급제하자 조강지처를 버렸다며 조정에 호소하였고, 조정에서는 한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김숙자는 이미 새장가를 들었고, 전처와 재결합하라는 조정의 명을 거부하고, 밀양으로 내려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학문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자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원에 천거되었으나 사간원 관리들이 이혼사건을 꺼내 반대하였고 세종은 결국 김숙자를 임명하지 못하였다.

당시 양반들은 첩을 두는 것이 보편적인 풍조였고, 김숙자의 아버지도 늘그막에 애첩을 두었고 동생도 첩을 두어 가정불화가 일어나자 편지를 보내 간곡하게 타일러 부부의 도리 를 다하게 하였다. 김숙자는 실패한 첫 번째 결혼을 뼈아프게 생각하여 첩을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녀의 혼사에 신중을 다하도록 유언하였다.

김숙자는 67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두 달 만에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청렴하였다. 잇 속을 차리거나 재산을 늘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숙자는 아들 김종직에게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못났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보배로다. 나는 진실로 이를 다행 으로 여긴다. 너도 내 아들인지라 나중에 못났다고 이름이 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 게 말하는 것에 괘념하지 마라”고 했다.

이혼이 일생의 과오가 되었던 시대가 있었는데 머지않아 결혼보다 동거가 더 많아질 것 이라고 하니 더 먼 훗날에 가족은 어떤 형태일까?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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