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소도
대한민국의 소도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5.12.11 14:14
  • 호수 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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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권력 연장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던 대학생과 시민들이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규탄대회를 마치고, 경찰에 밀려 명동성당에 들어와 경찰과 대치하였다.
경찰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연행하려하였고, 이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이 정부 당국자에게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학생들을 지켜냈다.
그 뒤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고, 종교가 혼란과 갈등, 대립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을 보여 주었다.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이 지난해 5월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에서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지난달 16일 조계사로 피신했었다.

경찰은 12월 9일 영장집행을 위해 조계사에 진입하였고, 조계종의 중재에 의해 한위원장은 12월 10일 경찰에 자진 연행되었다.
한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해 있는 동안 언론은 물론 조계사 신도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었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니 조계사에서 퇴거하라’는 신도들과 ‘누구라도 부처님 품에 들어온 생명을 내친 적이 없다. 공권력 투입도 안 된다’는 신도들과의 대립이 연일 이어졌다.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에서는 매년 한 두 차례 각 읍별로 제주인 천군(天君)을 선발하고 특별 장소를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면서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이 제사 지내는 장소를 소도라 하는데, '소도'의 명칭은 거기에 세우는 솟대의 음역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며 소도는 신성한 곳이므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었다.

구약성경에도 교회가 죄지은 자들의 피신처 역할을 한 ‘도피성 제도’ 등이 나와 있다.
이스라엘에는 실수 등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도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 여섯 곳 있었다고 한다. 자칫 피의 복수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이자 중재’의 뜻을 담은 것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며 한위원장의 피신을 정당화하였다. 
이들은 노동법 개정안이 일반해고 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확대, 임금피크제 통한 청년고용이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크게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급여에 절반밖에 안 되는 급여를 받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현실에서 고용불안은 노동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1929명이 산업재해로 죽을 정도로 한국의 산업 환경은 세계 최고로 열악하다.

더구나 숙련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개죽음이라고 할 정도로 비참하고, 발생 비율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이 별다른 저항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도록 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더욱 걸릴 위험성이 농후하다.

정부는 일부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로 치부하며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을 몰아붙이기 전에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진국의 사주들과 달리 탈세와 편법을 동원하여 늘린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한국의 재벌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조계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수백, 수천 개의 소도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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