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토리 줍기
[기고]도토리 줍기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10.24 14:39
  • 호수 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틈 시인

작은 도토리 안에는 키 큰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들어 있다. 그 나무에 달려 있는 나뭇가지들과 반짝이는 푸른 잎새들과 수많은 도토리들도 같이 들어 있다. 이 작은 도토리 한 알 안에는 햇볕과 바람과 잎새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들도 들어 있다.

도토리 한 알을 주우면서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고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 같은 것, 감동 같은 것을 느낀다. 이 작은 도토리 한 알 속에 그 모든 풍경이 들어 있다니.

그러니까 나는 저 높은 상수리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진 도토리 한 알을 허리 굽혀 주울 때마다 미래의 커다란 상수리나무의 한 생애를 미리 줍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도토리의 단단한 껍질 속에는 그렇다, 자연의 마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우주가 맨 처음 이 도토리만한 크기가 폭발해서 순식간에 우주가 되었다는 빅뱅설이 이해가 될 성부르기도 하다. 사실 가만 보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이 도토리 같은 알 형태의 것에서부터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도 정자나 난자 모두 알 형태다. 난자의 꼬리는 알 모양의 머리를 난자 쪽으로 움직여가지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주를 시작케 한 알. 그리고 그것이 폭발해 우주를 생성했듯 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도 알 형태가 ‘폭발’해서 생명체를 이룬다는 것이 우주의 생성원리와 흡사해 보인다.

올 가을 햇볕을 ‘동무삼아’ 바깥에 나갈 때마다 도토리 알을 주워왔더니 꽤나 많은 도토리들을 모으게 되었다.

도토리를 왜 그렇게 많이 모았는가. 올 겨울 눈이 많이 올 적에 뒷산에 올라가 눈을 헤치고 도토리를 뿌려줄 계획이다. 다람쥐, 까치 같은 산에 사는 친구들에게 겨우살이 식량 공급을 할 참이다.

듣기로는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어다가 여기저기 땅에 파묻어놓고 배고플 때마다 꺼내먹는데 열 군데 중 일곱 군데는 찾아먹고 세 군데 꼴로 어디에 묻어놓았는지 까맣게 잊어먹는다고 한다. 그 잊어버린 세 곳에서 도토리는 싹을 틔워 상수리나무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수리나무와 다람쥐는 7대 3으로 나누어먹기로 약정한 셈이다. 하기사 만일 상수리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모든 도토리가 다시 상수리나무로 자라난다고 가정하면 삽시간에 공원, 산은 상수리나무 정글로 바뀔 것이고, 이 땅은 상수리나무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상수리나무는 한 나무에서 보통 거의 한 가마니쯤의 도토리를 맺는다. 상수리나무 한 그루는 그 많은 도토리를 다 후손으로 삼을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산에 사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먼 옛날부터 해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나는 도토리 알 백 개쯤을 따로 남겨놓았다가 뒷산에 심을 생각도 하고 있다. 10년이나 20년쯤 후면 뒷산은 더욱 울창해질 것이고, 도토리가 더 많이 열리면 뒷산에는 몇 년 전부터 안 보이던 너구리며, 수많은 산새와 다른 짐승들도 모여들 것이다.

해마다 도토리를 백 개씩만 심는다고 해도 나 혼자 노력만으로도 뒷산을 참나무숲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뻐근해온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극성맞은 사람들이 해마다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공원과 산을 훑어 도토리를 다 주워가버리기 때문이다.

뭘 해먹는다나, 어쩐다나. 다람쥐가 없는 산, 새들이 없는 산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이제는 좀 도토리를 안 주워가도 먹고 살만해지지 않았을까. 오래 전 독일에 가서 보니까 숲에 밤톨이 함부로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