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으로 사는 인생
[기고]공으로 사는 인생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10.16 14:56
  • 호수 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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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시인

1년여의 요양소 생활을 마치고 나올 때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앞으로 어디에 쓸 텐가?” 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서 무어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그때 막 창조된 것만 같았다.

하늘, 구름, 새, 바다, 나무, 풀, 꽃... 모든 것들이 갑자기 그를 위해 바로 그 순간 처음 생겨난 것만 같았다. 그는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꾸벅 숙인 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평생 지금 하신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그 후 몇 년 간 그는 정말 붕 떠서 지냈다. 두 발이 땅을 딛지 않고 반쯤 떠서 돌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어디에 쓰고 살 것인가. 그것은 그에게 한참 무섭고 너무나 진지한 주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참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청춘도 영화도 직장도 세월의 저 편 먼 날의 추억이 되었다. 오는 세월은 더디 오고 가는 세월은 후딱 지나가는 법.

그는 요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듯 그가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계산해보곤 한다. 부끄러운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가슴 아픈 일들이 회상 속에서 수도 떠올랐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은 이런 저런 일로 그보다 한참이나 먼저 서둘러서 세상을 떠났다. 길가에 버려진 돌처럼 외롭게 그는 지금껏 살아왔다.

병을 앓고 다 죽었다싶은 그때 그는 부처님 말씀대로 다 비웠어야 했다. 다 내려놓았어야 했다. 욕망은 모든 것을 꽃피우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대체 인간의 탐욕이란 것들이 다 무어란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지옥으로 이끄는 ‘사탄’이 아니던가.

덤으로 사는 인생을 보람 있게 살자던 다짐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마음속에 켜둔 채 풍진 세상을 살면서 속진에 때 묻고 세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았던가. 와이셔츠를 입고 바깥에 나갔다 오면 셔츠 깃에 때가 묻어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기에 자주 반성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한데 그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을 어쩌랴. 이런 후회를 어찌 그 혼자만 했으랴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올 때 공으로 왔다. 무슨 입장료를 내고 온 것도 아니요, 무슨 영화(榮華)를 갖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삶의 끝이 어른거리는 요양소에서 나온 사람이 아닐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은 공으로 살고 있다. 다들 덤으로 살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허여된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공으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한다면 아닌 말로 천국은 바로 여기에서 볼 것이다. 그러나 마약을 맞은 듯 탐욕에 시달리며 한 평생을 그 탐욕의 노리개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고 슬픈 삶인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삼국지’의 이런 글귀가 떠올랐다. ‘그렇게 대륙을 호령하던 영웅호걸들은 자취도 없고 장강만이 유유히 대륙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지금 나는 인생을 허무하다는 둥 하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귀한 인생을 어디에 쓰고 사는지, 살 것인지 낙엽이 조락하는 이 가을에 가끔은 깊이 생각해보며 살고 싶을 따름이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낙엽은 꽃보다 아름답게 지고 있다.

“가을을 보낸 신이여, 한 말씀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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