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떤 아버지와 아들
[기고]어떤 아버지와 아들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10.11 11:49
  • 호수 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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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시인

밖에 나갔던 아내가 눈이 붉어서 들어왔다. 아는 분의 문상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얘기인즉슨 작고한 사람은 올해 환갑 나이 가장(家長). 그는 간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인생의 온갖 쓴 맛 다 보고 이제 세상을 누려도 좋을 한창 때에 세상을 떠났으니 가족들의 슬픔은 오죽했을까.

특히 남편을 일찍 잃은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남편은 평소 몸이 다른 사람들보다 건장하고 부지런하고 마음씨도 넉넉해서 이웃들에게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한데 자영업을 하다가 가세가 기울고 안 되는 사업 때문에 날마다 술을 마신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몇 해 전부터 간경화를 앓게 되었고 병세는 점점 나빠져 갔다.

병원에서는 처음에 살려면 간 이식 수술을 받는 수밖에 없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것도 빨리. 그래서 가족들의 간을 조사했다. 그러나 다 맞지 않고 오직 올해 서른 세 살 난 아들 것만 간이식 수술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작년에 결혼해서 손주까지 낳은 아들은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가 잘 나가고 있는 터. 아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자신의 간을 떼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입원준비를 서둘렀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더니 어느 날 아버지의 제안으로 온 가족이 함께 장성 축령산을 갔다 오자해서 숲 속에서 단란한 하루를 보내고 온 후 고인은 갑자기 간이식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들과 딸과 아내는 경악했다.

이유는 아버지의 모친, 형제들도 간이 안 좋아 일찍 타계했거나 병원생활을 한 간질환 병력이 있는 데다 몸 약한 아들이 간을 떼어주고 나서 아들까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또 간을 떼어주고 나서 아들이 직장에서 나중에 정리해고 같은 것을 할 때 첫 번째로 꼽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아버지의 결심을 다그쳤다.

아들이 울면서 아무리 졸라도 아버지는 단호했다. “난 살 만큼 살았다. 자식들 낳아 키워 결혼시켰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손주까지 보았다. 그러면 난 이 땅에 태어난 한 남자로서 할 것 다 한 것이다. 다만 네 어머니가 외로울 텐데 네가 여생을 잘 보살펴 드려다오.”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병원에서는 이제 더 치료해줄 것이 없다며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평소와 같이 마치 안 아픈 사람처럼 웃으며 손주를 어르며 두어 달 지내다가 죽기 전 날 병원에 들어가 가족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고 타계했다는 것이다.

난 아내가 전해 준 이야기를 듣고 얼굴도 모르는 고인을 위해서 잠깐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사람은 신문이나 책에 나와야만 훌륭한 인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을 어떻게 맞느냐로 판가름 난다.

법정 스님이 병원 입원 중 시봉 스님이 지금 마음이 어떠시냐고 묻자 “어서 장작불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했다. 남편이요, 아버지인 이 평범한 가장은 어떻게 죽음을 초월한 듯 저 세상으로 다리를 건너가듯 훠이, 훠이 떠날 수 있었을까. 마치 큰 스님처럼.

사랑하는 외아들의 안위를 걱정해 생을 포기한 아버지, 아버지를 살리려고 간을 떼어 간절히 아버지를 살리려 한 외아들. 여기서 삶이란 무엇일까, 따위를 묻는다는 것은 되레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내가 눈이 붉어서 귀가한 까닭이 한창 때 남편을 잃은 어느 지어미의 깊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더 살 수도 있었을 세상을 버린 그 아버지의 절절한 아들 사랑에 절로 코끝이 시큰해왔다.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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