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얼씨구! 친일 아리랑(3)
[기고]얼씨구! 친일 아리랑(3)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08.21 17:53
  • 호수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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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광주 ‘시민의 소리’ 고문

독립선언서를 쓰고 국조 단군을 드러내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역사가 최남선이 친일파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끼고 싶은 분이기에 그의 친일의 소행이 아니라 친일의 연유가 궁금해진다. 그는 여러 작품과 출판으로 조선정신과 애국을 고취하였다.

그의 조선 사랑을 들어 본다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그 사람이 싫어하고 물리치며 돌아선다는 것처럼 비참하고 가련한 일이 또 어디 있으리오. 조선 사람아! 조선 민족아! 그대가 만일 조선을 사랑하고, 그 산천을 돌보며, 그 정령의 거룩함을 깨달았을진대, 우선 자중하고 자애할지며 일치하고 합치함으로써 이 산천의 무궁한 생명을 만회하여 그 정령에 가납되기를 힘쓸 것이라 했다.

또 ’푸고 퍼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원천이란 우리의 백두산을 두고 부르는 이름일까 합니다, 생을 그의 밑에 품하고 정신을 그 아래에서 면려할 수 있음은 과연 얼마나 큰 우리의 은총이며 특권이며 행복이라 하겠습니까.’하는 말에서는 종교적 경건성마저 전해온다.

이런 분이 친일을 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의 자백에 의하면 당시의 한일관계가 장기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조국의 광복을 까마득한 것으로 우선 현실에 순응한 세속인의 자태를 살필 수 있다. ‘이것저것 구중중한 옷을 열 번 갈아입으면서도 나의 일한 실제는 언제고 종시일관하게 민족정신의 검토, 조국역사의 건설 그것밖에 벗어진 일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었다.

일본을 위한 학병 지원을 권고했다고 육당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온 세계의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 오직 조선 청년만 편히 앉아 있으라고 둬둘 성 싶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된다면 전쟁 뒤 어떤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비단 일본에 충성을 하기 위해서 나가라는 게 아니다. 어쨌든 총 쏘는 법을 배워두라는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학병 권유만이 아닌 육당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하기도 하여 민족의 군사력 양성을 언급했다는 증언도 있다.

최남선은 개화기와 국권상실의 일제를 산 사람이다. 그는 문화적 민족주의자였고 그랬던 만큼 엘리트주의적이었고, 점진주의적이었다. 최남선은 (소년)잡지를 내던 1909년부터 1910년까지 도산 안창호가 중심이 된 민족향상운동을 목표로 하는 청년학우회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안창호는 민족향상운동은 도덕운동이지 정치운동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민족의 품격과 역량을 향상하는 것이 혁명이나 정치에도 어머니가 되니, 부강한 조국에 급속히 도달하기 위해서는 향상 운동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도산이 신민회 활동을 하던 시절, 교육운동과 함께 민족향상운동인 수양운동을 일으켜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였다. 청년학우회는 1909년에 발기 되어 조직의 모토는 무실역행, 충의, 용감이었다.

최남선은 이 조직의 이론부문을 담당하였다. 안창호와 최남선은 전국을 순회하며 민중계몽 연설을 통하여 국산 장려운동을 일으켰다. 도산의 강연은 수천 군중의 심금을 울렸는데 그는 최남선을 군중에 소개하여 20세 밖에 안 된 젊은이가 혼자서 잡지를 간행하여 민족의 계몽과 새 문화창조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기특하기 짝이 없다고 높이 칭찬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최남선은 전국적 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한일합방이 되자 도산은 국외로 탈출하고 모든 결사와 신문은 해산 당하고 청년학우회는 흥사단으로 계승되고 국내에서는 수양동우회로 활동을 계속했으나 훗날 동우회 사건으로 해산 되었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희망의 나라로’는 어린 학창 시절 우리들이 즐겨 불렀던 조국 찬가의 한 대목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수호를 다짐했던 기억들이 이 땅의 연면한 학생 운동사를 기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과 나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없을 때, 존재의 계속성을 장담할 수 없을 때 회색 빛 절망은 희망을 밀쳐내고 우리의 의식과 감성을 엄습한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하는 역설적 희망가를 부르면서 청춘을 부랑했던 선배들의 탄식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놓아서는 안 되는 식민지 지성의 반어적 절규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는 반어적 절규마저 놓아버린 채 현실에 부유하는 그냥 생명체들이 되고만 것만 같아 슬프다.

100일도 넘어 표류하는 세월호 사건 처리에다 오리무중에 휩싸인 채 온 국민을 추리극 탐정으로 만드는 유병언 파동은 어떤 시대에 가능한 촌극들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으니 그 결말을 어떻게 매김질 할 것인가가 난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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