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푸른 숲길에서
[기고]푸른 숲길에서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06.07 15:32
  • 호수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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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시인

봄이 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은 꽃들의 낙화가 아니다. 내게 두고는 뒷산의 뻐꾸기 우는 소리다. 꽃철에서 잎철로 건너가는 늦봄 한때 뻐꾸기는 아련한 울음소리를 숲에 쏟아낸다. 내가 숲 그늘로 들어섰을 때 뻐꾸기의 애틋한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잠시 숲을 한 바퀴 휘돌아가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눈으로 더듬기라도 하는 양 한참 그 자리에 서있었다.

슬프다고도, 눈물겹다고도 하기 뭣한 뻐꾸기 울음소리의 아련한 여운을 느끼며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자들을 멀리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걸핏하면 무엇이 어째서 세상이 망조라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세상에서 한 마리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나를 적이 안심시킨다.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그러면 그렇지. 뻐꾸기는 어김없이 제가 울어야 할 때를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산은 나무들도 듬성해지고, 사람들도 함부로 산을 타다보니 뻐꾸기는 멀리로 가버리지 않았을까, 지레 안타까워했었다. 내가 그런 염려를 한 것은 어쩐지 올해 봄이 예년의 봄과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다.

아카시아 꽃향내도 그닥 짙지 않고, 게다가 해마다 꽃술에서 잉잉대던 벌들도 올봄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나는 뻐꾸기도 어느 다른 세상으로 간 것이려니 했었다. 이제 나로서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짧은 봄이 차려준 의식은 다 치른 셈이다.

그러니까 봄이란 것은 뭇 생명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대임이 분명하다. 초록벌레까지도 회화목 나뭇가지 아래로 마치 고층 유리창 청소를 하는 인부처럼 거미줄 같은 것을 타고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려 있고, 호수공원 물 위로 새끼오리들을 데불고 나아가는 어미오리의 늠름한 모습도 다 그런 한 시절을 말해준다.

하기사 이제 스물이 넘었을까 말까하는 처녀애들이 다시 짧은 팬티를 입고 나와 긴 다리를 쭉쭉 내뻗고 걸어가는 것도 다 생명의 잔치에 초대받은 모습들이 아닌가. 뒷산에 울려 퍼진 한 마리 뻐꾸기 울음소리는 나른한 봄 기운을 채근하는 것도 아니고, 제 짝의 현재 위치를 검색하는 신호도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알리는 소리다. 작은 벌레에서 숲속의 뻐꾸기까지 생명은 봄이 가기 전에 제 할 일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사실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잊혀진 봄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술에서 푸른 공기를 마시며 내가 시방 여기 와 있는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다. 진즉부터 그 답을 찾아보려 했으나 해마다 그냥 궁구하고는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뻐꾸기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듣노라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우리 인간은 매순간 항상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나는 그냥 뻐꾸기 우는 소리를 이렇게 단정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세상에 고하는, 바로 내가 우는 것을 대신하는 소리라고. 해남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시성 윤선도는 ‘우는 것이 뻐꾸긴가, 푸른 것이 버들숲인가’ 하고 초연해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밖에는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자연에서 더 따뜻한 위로를 느낀다. 누구처럼 세상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씻고 숲 속으로 들어가 은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이 가르쳐주는 순리에서 만물의 질서와 행로를 찾아보고 싶다.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작은 길에서 저만치 다람쥐 한 마리가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본다. 내 인기척에 놀란 모양이다. 굳이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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