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의는 찰나의 실수로 무너진다
[기고]정의는 찰나의 실수로 무너진다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4.03.21 15:02
  • 호수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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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전 호남대 교수

최근 1,100만 관객을 훌쩍 넘은 ‘변호인’ 영화를 보면 시민들이 자유와 평등, 박애(博愛)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니 송(宋)나라 명판관인 포증의 일대기를 다룬 ‘포청천’이 생각난다. 포청천은 북송시대의 유명한 정치가로 자는 희인(希仁), 이름은 증(拯), 여주 합비 출신이다.

포청천의 황금몽(黄金梦)편 중에서 포증의 철학이 돋보인다. 송나라의 황제는 청주에 살고 있는 전(前) 왕조의 후예인 정왕의 생신 축하 사절로 포증을 보내려 한다. 개봉부의 일이 바빠 원래 시행부서인 예부에서 맡아주기를 청하지만 포증을 청주지방 정무 시찰을 겸한 흠차대신으로 파견한다.

마침 청주지방에서 온 전청이라는 젊은이의 고발을 통해 청주 지방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광산의 채굴 전문가인 전청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광산에서 황금을 채굴하게 되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노역에 광부들은 하나 둘씩 지쳐 쓰러져 간 것을 본다.

병사들에 의해 노동을 통제당하며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작은 죄를 짓고 잡혀 온 죄수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병사들이 노동만을 강요하고 부상자가 생겨도 거들떠보지 않자 전청은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이었다.

경성을 떠나 청주로 향한 포증은 오랜 지기인 시왕을 만나 회포를 푸는 것도 잠시 곧 청주의 군정과 민정을 살핀다. 전조를 시켜 시정 상황을 살피던 포증은 청주 백성들 중 사소한 잘못으로 관아에 끌려간 후 실종된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포증의 계속되는 조사를 통해 청주 관아의 지주(장충)의 행적이 의심스러워질 찰나 왕야의 왕부에서 황금을 숨겨 놓은 창고가 발견되고, 포증은 광산 사건의 배후에 왕야(시왕)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그의 아들 시옥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포증은 관아에 체포된 시옥을 불러 정식 심문 전에 죄에 대해 묻는다. 시옥은 순순히 죄를 인정하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포증은 시옥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며, 백성을 위해 새 왕조를 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새 왕조를 열기 위해 백성을 희생시킨 것은 하늘을 거스른 것이라고 말한다.

포증의 말에 크게 감동한 시옥은 죄를 뉘우치고 의연하게 법의 심판을 받기로 한다. 그렇지만, 시옥의 사형이 집행되려는 찰나, 왕야는 태조황제가 내린 사면 성지를 들고 온다.

왕야는 “태조황제께서 내 선친을 정왕으로 봉하실 때 이 조서를 내리셨오. 그 어떤 죄를 지어도 한 번은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오.” 그러자 포증은 이 사면 성지로 시옥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태조폐하의 성지는 맞지만 시옥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증은 이 성지는 명시된 바에 따라 역대 정왕의 죄만 사할 수 있다고 한다. 시옥은 왕야의 장자이나 아직 왕이 되질 못했기에 시옥의 죄를 사할 수 없다고 한다. 왕야가 포증에게 “인정을 베풀 수는 없소?”라고 말하자 포증은 “저는 법대로 집행할 뿐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왕야는 “좋소. 그럼 내 작위를 당장 아들에게 물려주겠소”라고 한다.

포증은 “아들을 아끼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이 일만큼은 어쩔 수가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왕야. 저는 법대로 집행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뒤에 성지를 왕야에게 되돌려 주고 판결을 계속하려는 데 전조는 포증에게 “사면조서가 시옥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천하에서 왕야와 대인만 아시니 대인께서 눈 감아주시면 다 해결될텐데 어찌 거부하셨습니까?”라고 말했다.

포증은 “법과 인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어렵지, 정의는 찰나의 실수로 무너질 수 있네. 그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야. 아무도 모른다고 슬그머니 넘어간다면 그로 인해 더 많은 불행이 생길 수도 있네. 그건 법 집행자의 자태가 아니지.”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전조는 “왕야께서 너무 냉정하다는 원망을 하실지도 모른데요.”라고 말하자 포증은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법을 집행하는 이상 어떤 고통도 감내해야 하네.”라고 말한다. 결국 시옥은 개작두형을 당한다.

이 포청천 이야기는 법을 다루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이다. 우리 문화는 정적인 문화가 장점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적인 문화가 법을 다루는 이들에게 지배적일 때는 법의 존엄성은 무너져 버린다. 법을 다루는 이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정성을 지키려면 무엇보아도 인정에 이끌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일부 사법기관에서 ‘전관예우’나 선배에게 복종하는 것도 좋은 문화는 아니다. 이를 뿌리치려면 젊은 공직자들이 전관예우를 받지 않으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포증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법 앞에서는 인정에 이끌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선배가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들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부당하게 피해를 받는 국민들이 줄어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법기관이 바로서면 국민들이 살맛이 나고, 결국 국가도 번영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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