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휴가없는 휴가문화
[칼럼]휴가없는 휴가문화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12.07.20 16:27
  • 호수 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호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휴가는 바쁘고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누구나 휴가를 기다린다. 휴가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휴가문화는 본래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근로자들로 하여금 휴가조차 한가로이 보낼 없게 만든 사회구조가 왜곡되고 모순된 휴가문화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휴가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거의 모든 사람이, 거의 동시에 휴가를 간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휴가는 여름휴가를 의미하는데, 그것도 7월말과 8월초에 집중된다. 국토해양부 산하 한국교통연구원이 국민 4천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의 74%가 그 기간에 휴가를 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날씨를 고려한다면 7월말과 8월초는 휴가를 보내기 가장 좋지 않은 시기이다. 무덥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낮잠을 자는 것이 상책인 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에 집을 나와서 휴가지를 향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짧은 휴가기간 동안 유명 관광지역에 몰리다 보니, 교통이 막히고 숙박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해외로 휴가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국내 관광지를 택한다. 휴가지에서는 교통, 숙박, 식사 등 모든 면에서 일상보다 더 치열한 아귀다툼을 해야한다.

휴가문화는 산업화와 더불어 생긴 생활현상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일터와 놀이터가 크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자연의 주기에 맞추어 일하고 쉬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나 산업화로 새로이 형성된 공장근로자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의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근로자들이 임금인상 투쟁과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벌인 후에야, 휴가도 노동자들의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휴가문화가 조금씩 이식되기 시작했다. 월차휴가나 연차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근로자들은 사용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동료 근로자들의 눈치도 보아야 했다. 휴가자의 업무를 대체할 인력이 없고, 기존 근로자들이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 근로자들에게 동료근로자의 휴가는 업무증가를 의미했다. 결국 모든 근로자들이 동시에, 대신 최소한의 기간동안만 휴가를 가는 독특한 휴가문화가 조성되었다.

자연 근로자들의 휴가지역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우선 짧은 휴가기간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야한다. 결국 여름철 바닷가가 가장 대한민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휴가지역이 되었고, 부산 해운대와 같은 유명 해수욕장에는 수십만 피서객이 몰린다. 그런 곳에서 여유와 한가로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휴가지로 사람들이 갖고 가는 것 중의 하나가 책이다. 평소에는 바빠서 읽지 못한 책들을 휴가지에서 읽는 것이다. 그래서 휴가철이 그곳에선 도서시장의 성수기이다. 한국에선 당연히 비수기이다. 대신 한국사람들이 휴가지 소지품으로 빠트리지 않는 것은 카메라이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기억 속에서나마 짧은 휴가를 연장해보려는 애틋한 생각이다.

사실 여름휴가의 최적지는 자기 집이다. 어딜가도 집만한 곳은 없다. 휴가를 다녀오면 더욱 실감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근로자들은 집에서 편하게 휴가를 보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전쟁터같은 직장을 잠시 떠나 전쟁터같은 휴가지로 떠나야 한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장기를 두는 농부들처럼, 도시근로자들에게도 여유와 휴식이 있는 휴가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