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를 가다
DMZ를 가다
  • 변동빈 기자
  • 승인 2009.09.16 20:46
  • 호수 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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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도 우도 될 수 없는 사람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 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날래 들리지 않는다. 거기는 한 조박의 녹두 빈자나 한 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슬픔과 더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단편 소설의 완성자로 불리는 상허 이태준의 [복덕방]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그는 철원군 철원읍 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집이 “철원역에서 내려 철길따라 5리”(2km)라고 했다. 상허의 생가는 아무도 살지 않는 메밀밭으로 변해있었고, 녹슨 함석 비가림마저 기울어버린 ‘상허 이태준 생가터’라는 표지판만 남아있다. 생가 바로 맞은편에는 서울에서 원산을 오가던 철길이 둑을 이룬 채 아직도 남아있다. 

상허는 6세에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떠났다가 그 해 아버지가 죽고, 귀국했다. 그러나 9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18세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해 가람 이병기에게서 문학을 공부했고, 이 때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을 만난다. 1946년 해방 이듬해에 월북하여 60년대까지 북에서 작가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하나 그 후 행적은 알 수 없다.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백마고지를 탈환하여 지킨 땅으로 남북이 치열한 전투 끝에 사수한 우리나라 반공 1번지다. 대마리 마을 회관은 고문과 총살 등이 행해졌다고 전하는 노동당사의 외형을 그대로 본떠서 지었고, 마을회관 바로 옆에는 [상허 이태준] 문학비와 흉상이 세워져 있다.
북으로 넘어간 이태준의 문학비가 반공 1번지 대마리 마을회관 옆에 세워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태어난 철원군 어디에서도 그의 문학비를 세우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공 1번지 대마리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가장 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상허의 흉상은 한쪽 어깨가 기울어 있다. 조각가는 남북과 좌우에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상허의 갈등을 표현했다고 한다.

<DMZ에 묻힌 보물단지>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국민화가 박수근은 아내의 친정인 강원도 금성에서 남쪽으로 오는 피난길에 금성과 남대천 중간의 산에 박수근의 그림을 항아리에 담아 묻었다고 한다. 지금의 그림 값으로 치면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양이다. 지금은 항아리가 묻힌 곳이 DMZ 안에 있는 어디쯤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함광복 강릉방송 DMZ 연구소장은 강원일보 기자로 있을 때인 30여년 전부터 DMZ에 미친 사람이다. 그는 이 보물단지를 찾다가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 화가의 생가 터에 200여 평 규모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을 개관하게 만든다.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토속적이며 민중적인 삶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인구 2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의 군에서 군립 미술관을 연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박수근 미술관은 훌륭한 문화공간이며 꿈이다. 보물단지가 묻힌 DMZ가 아니었으면 박수근 미술관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언제나 전철을 타고 금강산을 갈까?
철원역에서 내금강산역까지 116.6KM의 전철구간이 완공된 것은 1931년이었다.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구미다미노스케 사장은 이곳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북한강 상류를 막아 태백산맥으로 굴을 뚫어 동해안으로 물이 떨어지게 하는 수력발전소를 만들었다. 이곳의 전기로 철원, 포천, 평강 일대의 전기를 사용하였고, 서울까지 송전하여 4만여 가구가 이 전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끊어진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 남북의 긴장 고조로 잠시 멈추었지만 남쪽 사람들이 고성에서 배를 타거나, 삼엄한 경비 속에서 버스를 타고 금강산에 갔다.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는 금강산 철길을 복원하여 전철을 타고 금강산에 가는 날은 언제나 올 수 있을까?
끊겨진 철길 옆에서 ‘전선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중년 부부는 철길이 개통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철원에 사는 울진 사람들>
53년 휴전 협정으로 DMZ가 만들어진 뒤에 54년 2월 미국 육군 사령관 직권으로 다시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남방한계선 바깥으로 5~20㎞의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민간인의 출입을 금했다. 이른바 민통선이다.
59년 태풍 ‘사라호’가 북상하면서 제주도를 초토화하고 여수 부산을 할퀴고 울산을 거쳐 동해안을 급습하였다. 전국 인명피해 849명, 이재민 25만 5천명, 건물파손 8만 1534동, 선박피해 5437척 등이었다. 왕피천을 끼고 있는 울진군 근남면 일대의 피해는 더욱 막대했다.
강원도의 주선으로 이주 희망자 66세대가 고향을 등지고 폐허가 된 민통선 내의 철원군 마현리로 이주하게 된다.

군 막사에서 뜬 눈으로 첫 밤을 지낸 울진사람들은 이튿날부터 괭이와 삽을 들고 다래넝쿨을 걷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착한 열흘 뒤에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지고 정부는 이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을 지키고 후손을 갈무리하는 보금자리와 땅을 일구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집을 세워야 했으며 허기를 면할 수 있는 곡식을 파종하기 위한 땅을 일궈야 했다.
지금은 넝쿨과 잡초의 황무지가 철원 최고의 옥토로 새롭게 탄생했고, 근남면 마현리에서 생산되는 쌀은 철원의 5대 쌀에 속할 만큼 최상급으로 이름이 나있다. 48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말씨는 영락없는 울진토박이요, 음식과 풍습도 울진사람들 그대로다.

<펀치볼에는 전국 문화의 집합장이다>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현리·오유리 일대의 정식명칭은 해안분지(亥安盆地)이지만 '펀치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6.25전쟁 때 격전지로 아직도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의 산에 둘러싸인 분지며,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다. 해발고도는 400 ~ 500m인데 차별 침식 분지라는 주장도 있고,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도 있다.
민통선이 그어진 후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오다가 1990년대 들어 국방부가 민통선의 범위를 대폭 북쪽으로 상향 조정함으로써 총 111개 마을 3만 7천여 명 가운데 51개 마을 1만 9천여 명의 통행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때 들어온 개척민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말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곡(哭)을 하지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부르듯이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풍습과 생활 습관을 가진 이들은 화채 그릇에 다양한 과일이 담겨 새로운 음식을 만들듯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펀치볼은 오래전에는 호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돌도끼,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3. 전쟁 박물관이 된 DMZ 박물관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대한민국 동해 최북단인 고성군 화진포는 금강산 관광을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이다. 화진포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별장과 김일성 주석의 별장이 있었던 곳으로 물이 맑고, 주변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화진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송현리 DMZ 박물관은 국`도비 5백여 억원을 투자해 2009년 봄에 개관했다.
DMZ가 탄생한 배경과 생태환경 등을 전시하고 있는 이곳이 관람객들에게는 반공전시관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냉전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DMZ 박물관이 평화박물관으로 바뀌는 날 ‘평화생명구역’이 되지 않을까?
1971년 로저스 유엔군 수석대표는 DMZ를 비무장지대,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53년 휴전협정 때 DMZ(demilitarized zone)를 만든 이유는 바로 비무장지대를 두자는 것이었다. 남북이 모두 이 협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1980년에는 남북교역 자유지대, 남북 관광지 공동개발을 제안했고, 1992년에는 국제자연보호 연맹이 DMZ 국제공원 조성을,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정 제안이 있었다.
정부는 DMZ를 ‘한반도 비무장지대 접경 생물 보전지역’ '평화생명구역(PLZ, Peace Life Zone)'으로 설정하자는 계획으로 DMZ 평화공원, DMZ 평화광장, DMZ 평화 생명마을 조성 그리고 DMZ 박물관을 건립했지만 평화의 실천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평화는 배려와 용서 그리고 화해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 6일 발생한 임진강 수해 사고와 관련해 남쪽의 관계자는 물론 언론에서도 북측의 도발이니 강경 대응이니 하는 발언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북쪽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방류 직전 황강댐이 만수위였으며 지난달부터 사고 발생일인 이달 6일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물을 방류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남북의 냉전과 갈등에서 온 소통부족과 남쪽 재난 방재 시스템의 잘못은 뒤로하고, 사고의 책임을 북쪽에만 돌리는 사고는 결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구할 수 없다.
이승만 별장에는 6.25가 발발하기 전 이승만이 북으로 쳐들어가 통일을 이룬다는‘北進統一’이라는 글씨가 액자에 걸려있고, 군 장성들은 이승만대통령에게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서약했다. 평화통일을 주장했던 조봉암 등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죽었다. 아직도 남북이 진정한 평화 통일 의지가 있는지?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소용없는 노릇이다.

4. 어린 연어와 수달
1997년 4월 고성군 남강에서 어린 연어 1만여 마리를 방류했다. 남강은 DMZ(비무장지대)를 흐르는 강이다. 97년 이후 어린 연어 방류는 계속되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있고부터는 남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이듬해인 2001년 4월에는 남강과 안변군 남대천 중류에서 어린 연어 55만마리를 방류했다. 금강산 삼일포 지역 솔잎혹파리 방제사업, 씨감자원종장 등 각종 교류협력 사업도 이뤄졌다. 시군 차원의 교류협력도 확대돼 철원군이 북강원도와 지난 2000년 벼농사 재배기술 협력사업에 나섰고, 고성군은 공동 어패류증식 사업을 추진했다.
2007년 가을 수달 ‘한강’이를 방사했다. 수달의 뱃속에 신호기를 넣어 흐르지 않는 강 북한강을 따라 이북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북한강이 흐르지 않는 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에서 임남댐(금강산댐)을 막고, 다시 남쪽에서는 평화의 댐을 막았다. 임남댐은 수력발전을 하기 위해 동해안으로 물꼬를 만들어 한강으로 유입되던 연간 16억 톤의 물이 끊기게 되어 한강 유입량의 12퍼센트가 줄어들어 한강 하류에 있는 서울 지역에 물 부족 현상과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고 있다. 사실 임남댐의 건설로 북쪽이 물로 인한 남쪽의 공격을 목표로 한다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평화의 댐을 막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화천을 지나 북한강으로 유입되어야할 물이 끊겨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서울에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록 작은 실천이지만 어린 연어를 방류하고, 수달을 방사한 것은 막힌 물꼬를 트고, 남북이 화해와 공존으로 가는 민간 차원의 좋은 시도다.
지구상에 같은 말을 쓰며, 형통이 같은 한민족이 철책을 쌓고, 지뢰를 묻어 50년이 넘게 총을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철책은 하루 빨리 걷어내야 하지만 DMZ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묻혀있고, 냉전이 만든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남북이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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