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뻗어 자연의 창공속에 너를 우러러 보노라"
"두 팔을 뻗어 자연의 창공속에 너를 우러러 보노라"
  • 김은정 기자
  • 승인 2009.08.13 12:59
  • 호수 2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성의 나무]

장성읍 유탕리 입구 당산나무들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무를 받아들이는 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흔히 시골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는 수령 300~400년 된 것들로서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기도 한다.

몇 사람이 두 팔을 뻗어 감싸 안아도 그 둘레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나무들도 많다. 산지가 험난한 우리 고장 장성은 마을 앞 당산나무 등 노거수, 고목 등이 많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하고 든든해진다. 황룡 금호리처럼 풍수지리사상 때문에 수구막이로 마을숲을 조성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발이란 이름으로 오래된 나무, 좋은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다. 도로를 낸다고 마을이 수몰된다고, 하물며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오랜 나무들의 밑둥이 송두리째 잘려나간다. 토속신앙의 하나인 샤머니즘이 미신이라 하여 다른 종교에 배척당하고, 달빛 아래 정화수 떠놓고 간절히 바랐던 마음속의 나무를 잘라버린다.

마을의 오래된 나무들은 마을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마을의 노거수는 음력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고 한해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치르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또한 나이든 어르신들이 개구쟁이 시절 동무들과 함께 나무를 타고 그 아래서 놀이를 즐기는 등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이 치고 눈보라가 치나 나무는 그 곳에 끄떡없이 서 있다. 그렇게 사계절 변함없이 서 있다. 나무는 우리에게 푸르름을 주고, 그늘을 주고, 꽃을 피워 향기를 뿜으며, 열매를 선사한다. 또 땔감을 주고, 여러 가지 목재, 가구, 공예품을 만들게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우리에게 이로움만 주었지 해를 주지 않은 듯하다.

백양사 '고불매'
북하 단전리 '장군나무'
장성군에는 세 그루의 천연기념물 나무가 있다.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 486호), 백양사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153호), 북하 단전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478호)가 그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백양사 ‘고불매’는 350년 수령의 매실나무로 이른 봄 단아한 담홍색 붉은 꽃과 함께 은은하면서도 짙은 향기가 일품이다. 호남 5매 중 하나다.

단전리 느티나무. 수령 400년에 달하는 당산나무로 ‘장군나무’라 불리운다. 산암 변시연 선생이 생전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계신 모습이 선하다. 임진왜란 이후 단전마을에 입향한 사람이 순절한 형을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고 하여 장군나무라 하며, 장성의 노거수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다.

백양사 비자나무 군락은 우리나라 비자나무 자생지중 가장 넓은 분포를 자랑한다. 열매는 좀 비리하면서도 고소하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나무’

특히 단전리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만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다. 흔히 큰 나무에는 ‘령(靈)’이 있다고 한다. 나무의 신령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베어서도 안되고 다치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

여기에 전해들은 얘기가 있다. 지금은 어른들이 휴식처가 된 단전리 느티나무는 예전엔 아이들의 친구이자 놀이터였다. 몇 십년 전, 여느 때처럼 나무를 둘러싸고 놀다가 해질녘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이유없이 아팠다. 온갖 처방에도 병이 호전되지 않자 아이 부모는 결국 점쟁이를 찾았다. 점쟁이가 ‘나무에 못을 박아서 그렇다’고 말하자 그곳에 가보았더니 과연 나무에 못이 박혀 있더라는 것.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기 위해 못을 박아 올라갔던 것이다.

또 나무가 오래되다 보니 스스로 가지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가지를 가져다가 땔감으로 사용했다가 큰 낭패를 본 가구가 있어서 이후엔 그냥 버렸다고 전해진다.

변시연 선생의 아들 변동보 씨가 어느날 자정 무렵 나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5명의 신령이 나타났다고 한다. 변 씨는 “2명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었고, 3명은 동자승이었다. 그 분들이 나무의 정령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며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토속신앙의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의 당산나무는 누구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 앞에서는 행동뿐만이 아니라 마음가짐도 정갈해야 한다. 나무가 절대신인냥 사람의 마음을 꽤 뚫어 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삼계 생촌리 '천룡'
삼계 생촌리의 천룡이라 불리는 수령 500여년의 소나무도 마을의 수호신이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지내는 생촌의 당산제는 장성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천룡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 규모와 형상이 장엄해서인지 보이지 않는 위엄과 신령스런 분위기마저 감돈다.

멋진 경관을 주는 ‘나무’

그 모양이 아름답고 빼어난 나무도 있다. 남면 덕성리 당산거리에 있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그것이다. 400년이 넘은 소나무는 꼬부랑 할아버지의 지팡이 마냥 멋들어지게 휘어져 있다. 바로 옆 버드나무 또한 소나무에 버금가며 S라인을 자랑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소나무의 모양은 현재와는 달랐다. 가지가 양 갈래로 나뉘어 있었던 것. 도로가 생겨나며 소나무를 그 장소에 그대로 두었지만 차량들이 한 쪽 가지에 닿아 걸리적거리자 한쪽을 잘라냈다.

남면 덕성 당산나무
읍 유탕리 입구의 가로수는 누가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넉을 잃고 말 것이다. 몇 백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채 옹기종기 들어선 모습이며, 한 그루 한 그루가 세월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자연의 미 그대로다.

선비의 절개를 드리우는 ‘나무’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가 있다. 필암서원내의 ‘백송’과 맥호리의 ‘어사리’가 그것이다. 오른편의 출입문으로 서원내에 들어가면 청절당 앞쪽에 200년은 족히 넘은 듯한 묵은 은행나무가 왼편 한 귀퉁이에서 자라나는 왜소한 백송보다 눈에 띌 것이다. 지난 2000년 필암서원 성역화사업이 시작할 무렵 하서 김인후 선생의 후손인 김상홍 삼양사 회장이 수령 50년된 백송을 기증했다.

필암서원 '백송'
백송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볼 수 있는 희귀종이다. 껍질이 하얀색을 띄어 청렴결백의 고결한 선비의 기백이 느껴진다.

황룡 맥호리 맥동마을의 ‘어사리’ 또한 하서선생과 관련이 있다. 하서 선생의 생가가 있는 백화정 근처에는 임금이 내렸다는 배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10여 미터에 이른다. 1544년 하서 선생이 인종으로부터 배를 하사받고 그 씨를 심었는데 싹을 돋아 지금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배나무는 맥동마을의 김진태 이장 집(맥호리 196번지)에 있다. 김진태 이장은 “배나무가 저렇게 큰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다. 지금도 열매가 열리기는 한데 작고 볼 품은 없다. 너무 높아 딸 수는 없지만 바람에 간혹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하며 “어사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테 표지판 등이 없어 찾는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군에서 표지판이라도 달았으면 한다. 우리 집으로 오면 된다”고 말했다. 나주 임업시험장에서 배나무 육종 교배를 시험중에 있다.

마을 주민들을 살려낸 나무도 있다. 북이면 오월리 송산마을엔 커다란 구멍이 뚫린 나무가 있는데, 6 25 동란을 겪을 때 마을의 부녀자와 아이들이 모두 나무 속 구멍에 들어가 몸을 피신했다고 전해진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

황룡 맥호리 '어사리'
동화면 동계리에는 마을의 당산나무 중간 턱에 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200~3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당산나무에도 커다란 구멍이 있었는데 어느 날 불이 난 후 그 곳을 막아 놓은 것이 버찌씨가 떨어졌는지 6년전부터 산벚나무가 느티나무에 기생하며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장성의 명산 축령산은 편백나무와 삼나무로 대표되지만 거기엔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있게 마련이다. 임종국 기념비에서 해발 621m 축령산 정상까지 오르는 산중에는 가지가 요상하게 꼬여 있는 서어나무, 굴참나무를 몇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시력이 빼어나게 좋거나 운이 억수로 좋은 사람에게만 보일 것이다.

나무가 없는 삶은 슬프고 황량한 삶이다. 겨울날 앙상하게 메마른 가지일지라도 나무는 우리에게 봄날에 다시 피어날 푸른 새싹과 꽃망울을 기대하게 한다. 임야가 전체 면적의 60%가 넘는 장성은 푸른 자원이 무궁무진 펼쳐져 있다. 그곳에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장성의나무 하나하나가 후손에게 물려줄 귀중한 자원, 자산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다 장난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보고, 흔히 자기 소용 닿는 대로 가지를 쳐가고 송두리째 베어가곤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베어간 재목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 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