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향교의 역사
장성향교의 역사
  • 오유미 기자
  • 승인 2009.03.05 09:18
  • 호수 2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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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향교는 현재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 110번지에 소재하고,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제105호 (1985. 2. 25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1395년(조선 태조 3년)에 그 당시 장성읍 터인 현 북일면 오산리 산19번지 교촌에 장성향교가, 현 진원면 진원리 산64번지 고산마을에 진원향교가 각각 세워져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진원현이 피폐, 자립이 어렵게 되자 1600년(선조 33년) 진원현이 장성현에 병합되면서 장성항교는 현 장성읍 장안리 장자동에 진원향교와 통합 이전됐다.

그후 1658년(효종 9년)에 전란으로 퇴락된 관방유적을 보수 확장코자 군비 확장책으로 입암산성에 수진관이 설치되면서 장성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장성항교도 교생의 정원이 현 단위인 30명에서 도호부 단위인 70명으로 늘어남에 따라 향교의 규모를 확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안리 장자동의 터가 비좁아 1658년(효종 9년) 3월에 현재의 향교가 있는 장성읍 성산리 성자산 아래 좋은 터를 잡아 이건을 추진하였으나 국가에서는 터를 옮기지 말고 장자동에 다시 지을 것을 명했다.

하지만 그해 4월 국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장성부의 유생들이 새로운 터에 건물을 지으려 하자 국가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초대 도호부사를 징계하고 교생들을 중벌에 처했다.

그후 10월, 감사 서필원이 조정에 장성향교의 형세 및 조건이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는 보고서를 올리자 조정에서는 감사를 장성부에 내려보내 옛 터의 협소여부와 새로운 터의 건물 완성의 진척상황을 보고토록 조치했다.

결국에는 그해 10월 새로운 터인 현재의 장소로 향교를 옮겨 지었으며, 1796년(정조 20년)과 1850년(철종 원년)에 대성전이 중수되었다.

현재의 대성전에는 공부자를 정중앙 상단에, 동위에 안자와 자사자를, 서위에 증자와 맹자 5성을 봉안하고, 동벽에 종향(설 총, 정 호, 안 유, 김굉필, 조광조, 이 황, 이 이, 김장생, 김 집, 송준길) 10위와, 서벽에 종향(최치원, 주 희,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 혼, 조 헌, 송시열, 박세채) 10위로 총 25위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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