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초 북상분교 '마지막 여름방학'
약수초 북상분교 '마지막 여름방학'
  • 오유미 기자
  • 승인 2008.07.17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성군내 마지막 분교 오는 9월 1일자 폐교

 

“선생님, 정말 방학해요?” “그럼, 방학하지.” “방학 끝나고 선생님 만나요?” “글쎄, 방학 끝나면 너희들은 이제 본교로 가고…” “그럼 선생님은요?”

2·3학년 담임인 김윤자 선생님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던 하리(2학년)가 “선생님, 방학 끝나면 학교 없어져요?” 한다. 믿을 수가 없다는 투다. 선생님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대신 약수초등학교로 가잖아.  너, 그곳에서 언니랑 같이 다니게 됐다고 좋다고 했짆아” 하며 얼버무리신다.

지난 22일 약수초등학교 북상 분교. 교사 두 명에 학생이 4명인 시골분교가 곧 방학에 들어간다. 여느 초등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이나 환호성은 없다. 행여 방학 중에 학교에 나오랄까봐 걱정스런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도 없다. 오히려 선생님과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4명의 아이들 응석만이 있을 뿐이다.



북상분교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교문을 닫는다. 학생이 계속 줄어 더 이상 학교를 운영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장성군에 남아있는 마지막 분교가 폐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썰물처럼 아이들이 떠났다. 올 해 들어서도 20명이던 학생들이 본교로 16명이 옮기면서 대석이(5학년) 병은이(4학년) 선규(3학년) 하리(2학년)만 남아 오늘까지 학교를 지켰다. 그러나 이제 이 아이들도 학교를 떠나야 한다.

대석이와 병은이는 도시 아이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학습 실력을 자랑한다. 4·5학년 담임인 김종대 선생님은 아이들 칭찬에 입이 마른다. “특히 대석이는 우수한 학업 성적 때문에 서울로 유학갈 뻔 했다”며 “그래도 대석이는 피아노에, 그림에, 컴퓨터까지 독선생을 모시고 공부하다시피 하고, 부모님들도 개인교습이나 마찬가지인 이 학교가 좋다고 말한다”고.

MC몽의 서커스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선규(3학년)는 학교의 분위기 메이커다. 3학년인데도 형들과 같이 등하교하는 선규는 하리에게는 든든한 오빠이고, 형들에게는 장난꾸러기 동생이다. 새침떼기인 하리는 그야말로 공주다.

북상분교는 높게 솟은 뒷산에서는 뻐꾸기와 산까치가 울어대고, 앞쪽으로는 장성호가 보이는 곳에 사뿐히 앉아 있어 4명의 아이들의 놀이터다. 그곳에서 당당함과 넉넉함을 배우던 아이들은 친구 같던 동상도, 아름드리 나무도, 넘어져도 아프지 않던 푸른 운동장도, 매달려 세상을 거꾸로 보던 철봉대도 이제 추억이 된다.

서로를 더 이해하며 다독거리고 살아가는 들꽃 같은 아이들로 자라는 대석이, 병은이, 선규, 하리를 보면서 곧 폐교가 되는 분교가 아이들에게 어떤 힘이 되어 주는지, 작은 학교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마을 주민 최씨는 “체육시간이면 운동장을 선생님 뒤로 꼬맹이 둘이 ‘헛둘 헛둘’ 구령 따라 뛰어오는 걸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며 “이제 이 마을에도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 뛰어다는 소리, 웃음 소리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다”고 말한다.

농촌에서 어린이들이 줄어들고 있고,  취학 아동의 감소로 결국 분교로 전락하고 급기야 분교마저 폐교되거나 인근의 조금 더 큰 학교로 통합되는 현실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통폐합은 효율적인 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일이다.

북상분교를 졸업한 최씨는 “1937년 개교해서 올해로 71년이 되었다. 1975년 북상면 수몰과 함께 지금의 북하면 신성리로 이전한 북상분교가 9월 폐교되면 마을을 잃은 수몰민에게 정신적 고향마저도 빼앗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는 김종대 선생님에게도 북상분교는 특별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일방적인 농어촌 작은 학교 통폐합 정책은 학부모도, 주민도, 선생님도 전부 동의하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라는 학교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진정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4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이고, 아빠인 선생님을 보면서 폐교되는 분교보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지금의 이 모습대로, 아이들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억지스러운 것일까.

취재를 하겠다고 나섰던 이 길이 어쩌면 이 학교, 이 아이들의 마지막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돌아오는 길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맑은 눈망울로 선생님을 졸망졸망 쫓아다니는 녀석들의 마음이 기자 뿐 아니라 북상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위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북상북교는 기억 속에 영원히 자리 잡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