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에 옷을 입혀 가치를 더하다’

50여 년간 전통 표구를 지켜가고 있는 반길선 장인

2020-03-09     이미선 기자

서화(書畫)를 액자나 족자로 장식하는 표구. 그 일을 50여 년간 해온 장인이 있다.

그는 장성군 서화표구사 반길선(70) 대표, 장성군 서삼면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의 나이에 광주에서 표구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해 스물여섯 살 무렵 고향인 장성에서 표구사를 열었다.

커피보다는 우려낸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반 대표와 50여 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담소를 나눴다.

 

'표구가 내 인생이 될지는

열여덟 살의 나이에 우연한 기회로 의재 허백련 화가가 중심이 되어 광주에 개설해 전통 서화교육과 교유를 목적으로 한 연진회라는 곳에 들어가 표구일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 기술을 배우며 일을 하다 스물여섯 살에 저의 고향인 장성역 앞 사글세 건물에서 표구사를 냈어요. 거기서 37, 현재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지 7, 올해 저의 나이가 일흔이니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연진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에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표구가 내 인생'이 될지 말이다.

표구는 서화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꾸미고 나무와 기타 장식을 써서 족자, 액자, 병풍 등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서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한 용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서화가 없으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표구. 그러다 보니 전통문화의 한 분야이건만, 서화의 작품은 누구인지 기억해도 표구는 누구의 작품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표구란 정직하게 살게 해준 나의 직업

표구를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꾀나 오래 걸린다.

표구도 그림처럼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반 대표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어느 공정 하나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없다. 표구사가 단지 표구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한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 광주는 물론이고 각지에서 찾아올 만큼 반 대표의 솜씨는 소문이 났다. 원형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훼손된 부분만 복원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겉모습만 보고는 잘된 표구와 잘못된 표구를 알 수 없다. 표구 장인의 양심에 맡겨져 있는 문제다. 그래서인지 표구 장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 뭐냐고 질문했을 때, 반 대표는 '정직성'을 뽑았다. 그에게 표구란 정직하게 살게 해준 나의 직업이란다.

 

 

소박하지만 정직한 마음으로

경기가 악화된 요즘에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해온 표구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표구 일을 하고 싶습니다

병 중에서 가장 큰 병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반 사장은 표구 일을 천직인 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니냐며 표구일을 하면서 조금 벌면 조금 버는 대로 살고 많이 벌면 저축하면서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살면 그게 행복이라는 소박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반 대표, 오늘도 자신의 삶을 돋보이게 해주는 표구 하나를 만들고 있다.

 

 

전통의 미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표구문화가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음에도 서화표구사는 장성군에서 최초이자 마지막까지 굳건하게 전통 표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모르긴 해도 장성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 대표의 손이 간 글씨나 그림, 사진 하나쯤은 집에 걸어두고 있지 않을까?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장인'의 모습을 엿본 시간이었다. 쉽지 않은 표구 장인의 길, 싹을 지키는 마음을 잃지 않고 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