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선생의 교육이야기
황인홍선생의 교육이야기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9.3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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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반 아이, 일남이
무단결석 3일째이던 일남(가명)이가 아침 일찍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낯을 붉히며 교실로 들어선다. 1년이면 2~3차례 이어지는 무단결석이라는 이 못된 버릇을 이번만큼은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고쳐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을 잡고 “3일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냐?”고 묻자 두 눈에서 눈물부터 뚝뚝 떨어진다.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지만 학교에서까지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꼭 잡은 두 손안으로 안타까움과 연민이 밀려와 단단히 마음먹고 때리려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내 마음 속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결석병’이 도지는 일남이는 초등학교 때 부모의 부도와 도피로 나이 많으신 조부모에게 맡겨져 의식주만 겨우 해결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가정이다. 머리는 영리하지만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습관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학여행, 야영수련활동, 테마소풍 등 돈이 들어가는 학교 행사가 가까워지면 더 힘들어한다. 다른 아이들 모르게 비용을 대고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을 함께 하면서 대화의 기회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좋은 말로 타일러 보았고, “가장이나 다름없는 네가 정신 못 차리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호통도 쳐보았지만 중2학년이 되어서도 버릇은 여전하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기는 누구나 한번쯤 자기 가정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받아들이기 힘들고 환경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일남이처럼 어떤 식으로든 갈등한다. 어떤 아이는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요즘 일남이와 같은 경우를 종종 본다. 시골학교에서 담임을 하다보면 소위 가정 결손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 1/3을 넘어 거의 절반에 가까울 때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학교생활규정에 체벌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때려서라도 가르쳐야할 때가 있다. 흔히 매를 들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아이가 매를 통해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닐까?

어려운 아이들일수록 따뜻하게 대해야 마음을 붙인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해야할 일은 물리적인 힘으로 잘못을 고쳐주는 것보다는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나는 학급 운영의 한 방편으로 ‘모둠일기’를 쓰고 있다. 몇 개의 모둠 이름을 정하고 5명 정도로 구성하여 1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일기를 써간다. 간혹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소재로 쓴 글 밑에는 담임과 친구들의 생각이 인터넷 토론방처럼 이어진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일수록 아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많고 격려도 보인다. 나만 걱정과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공감하면 눈에 띄게 태도가 좋아진다.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것 일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마당(장) 자체가 교육이기도 하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만이라도 일남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배워야할 시기의 아이들이 있을 곳은 일터나 유흥업소가 아닌 학교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장성지회장 황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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