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4.04.09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자연이 새 생명으로 충만하여 기쁨과 희망의 새봄을 맞이한 이 때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영적 봄이라 할 수 있는 예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승리’를 기뻐하며 온 세상에 이 기쁨을 전하는 전령(傳令)의 몫을 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전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부활은 허황된 환상이나 후대의그리스도 신자들이 꾸며낸 사기극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서 그리스도인들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1고린 15,14)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 부활을 말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슨 이상한 기적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것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과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1고린 15,3-5).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이상한 기적을 행했으니까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 부활하신 분이므로 하느님의 약속을 실현시키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적으로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예언된 말씀의 성취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예수 부활을 생물학적인 소생(단순히 옛 생명을 되찾은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시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다스리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생물학적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의 힘으로 살아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도 아니고 더구나 소생도 아닙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충실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존재와 생명을 되돌려 주심으로써 죽음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시며 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셨음을 뜻합니다.

예수 부활은 그분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데 대한 성부의 응답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한 종에게 내리시는 보상입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필립2,8-9).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하신 일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부활은 되살아남입니다. 마치 산속의 나무가 겨울에는 잎을 떨어뜨리고 다시 겨울잠으로 들어갔다가 봄이 되면 새 생명을 받은 것처럼 다시 살아나듯이, 부활은 끊임없는 되살아남입니다. 그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받고, 이어받아 새로 탄생하는 생명력을 뜻합니다.

세상의 불의에 죽은 듯 있던 진실은 끊임없이 되살아납니다. 성실한 삶을 통해 추구했던 소박한 행복이 한순간에 무너져도 희망의 빛도 결코 스러지는 법이 없습니다. 무관심한 탐욕이 참사랑을 가리고 가려도, 그 사랑의 빛은 끊임없이 어느 누군가에 의해 끈질기게 다시 비춰집니다. 이것이 곧 부활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희망을 간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밝혀주어야 할 어두움이 너무나 짙게 깔려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심하게 파괴되어 물마저 안심하고 마실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황폐하게 되어 사소한 동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예사로 벌어집니다. 한해에도 수백만의 태아가 세상의 빛도 못본 채 어머니의 뱃속에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개방화의 물결앞에 농민들은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정치지망생들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들이 온 국민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에 압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은 우리가 어떤 사태앞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희망으로 구원된”(로마8,24) 우리가 세상에 부활의 빛을 전할 때 세상의 얼굴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박창진 신부 (천주교 광주대교구 장성성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