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니?”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니?”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9.01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초쯤이었다. 퇴근하여 식구들과 저녁을 먹으려는데 밥상 분위기가 여느 때와 상당히 달랐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가 국어 받아쓰기로 30~40점을 계속해서 받아온다는 것이었다. 산수 능력도 부족하니 학원을 좀 보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평소 내가 아이들을 사설 학원에 보내는 것에 대하여 탐탁지 않게 여기는지라 말문을 열기가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직 1학년이니 집에서 엄마가 조금만 도움을 주어도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학원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일 것 같다는 의견을 내 놓는다. 그러나 그 날 내린 결론은 교사로서 어린 내 아이의 교육을 학원에 맡기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원이야기가 나왔으니 딸의 이야기까지 마저 하자. 가끔 친구들로부터 그럼 넌 아이들 학원 안 보내며 사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불행하게도 큰 아이를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큰 딸이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한 지식을 쌓는 것이며, 학원 갈 정성이면 여러 가지 체험학습과 봉사활동 등 견문을 넓히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딸이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학원 공부가 아빠의 말처럼 비록 문제 풀이와 적응 위주의 단편적인 것이긴 해도 편하게 공부할 수 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있는데 아빠의 주관에 의해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은 무시되어도 되는지를 다소 볼멘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자기 문제이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승부는 뻔했다. 네 의견을 존중해 줄 것이니 좀 다녀보고 아니다 싶거나 아빠의 생각에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되면 그만 두자는 토를 달며 결국 사설 학원을 허용하고 말았다. 좀 다니다 그만 두겠지 생각했으나 중 1학년인 딸은 여전히 다니고 있다. 몇 년 만 기다리다 도중하차 시켜야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지만 지금도 웬지 씁쓸한게 사실이다.

나는 사교육비의 문제나 공교육의 불신 등에 대한 거대 담론에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몇 가지는 나름대로 원칙적인 부분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설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교육관이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이중적인 시각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학부모의 83.3%가 “도덕성이나 인간성 교육이 성적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73.5%가 “자녀가 하기 싫어해도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51.8%는 “자녀가 학원 가서 있거나 과외를 받고 있는 시간에는 마음이 편하다”고 밝혔다. 사교육 참여율은 73%이며 절반이상이 사교육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8/27자 보도 내용)

위의 결과를 보면 사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사교육비가 부담되나 아이들을 간섭하고 적당히 통제할 수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부모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런 통제가 적거나 없어도 스스로 자라고 있음을 자주 확인하곤 한다.

10여 년 전, 어느 모로 보나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부모를 둔 학생이 있었다. 그는말썽을 피워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다 결국은 도중에 배움까지 포기하였고 부모는 아쉬움을 절절히 표현했었다. 반면 홀어머니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모범생으로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소위 명문대에 진학한 아이를 만난 적도 있다. 그 엄마는 시장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소위 술장사를 하는 분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학원을 몇 시간이나 보내며 얼마짜리의 과외를 시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자세가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인지를 학교나 가정에서 가르쳐야한다.

흔히 방학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게 좋은지 질문을 받곤 한다. 여러 가지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겠으나 나는 가장 먼저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권한다. 밥 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리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도 일어날지 모르며 밥은 세참처럼 먹는다면 하루 중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해도 큰 점수를 줄 수 없다. 관대하고 사랑이 많은 요즈음의 부모들은 방학 때나 좀 편하게 자라고 그냥 놔둔다고 한다. 그러나 좀 지나치면 당연히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 거울을 몇 번씩 보면서 산다. 외모엔 관심을 갖지만 자신의 내면 세계를 매일 다듬는데는 부족하다. 자녀 교육도 비슷하다. 시험 성적이 몇 등인가에는 대단한 관심을 보이지만 정녕 자녀의 생활 태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쉽다. 이제는 “몇 등 했어?”라는 말보다는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니?” “뭐가 가장 기뻤니?”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면 어떨까?

2001학년도부터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은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취지를 갖고 시행되었다. 한 줄 세우기가 아니라 특기와 재능에 따라 여러 줄 세우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무조건 공부하라는 강요보다는 교육의 큰 목표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아무튼 오늘날의 부모는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이중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래저래 고민스럽기만 하다.

전교조장성지회장 황인홍(장성남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