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감동케한 이 한권의 책
나를 감동케한 이 한권의 책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8.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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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



마흔. 사람의 나이 마흔은 녹녹치 않은 나이다. 어른들이 들으시면 허허 하시겠지만 말이다. 젊은 날의 혼돈과 열정과 배타적 가시돋힘이 서로 어우러져 조심스레 서로를 쓰다듬으며 녹아드는 나이가 아마 마흔이 아닐까?.

더구나 이 땅에서 역사의 소용돌이를 어떤 형태로든 경험해온 40세 전후의 사람들에게 그 나이의 내용은 쓰라린 아픔이기도하고 미움이기도 하고 때로는 한숨이기도 하고 때로는 포용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러한 온갖 수사적인 어휘를 덧붙인다 하더라도, 마흔 안에 어떤 일관된 원칙이 없는, 빈 쭉정이 뿐인, 흔히 사람들이 즐겨 쓰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인생철학이 아닌 다음에야 말해 무엇하랴.

아이를 둔 어미는 길 떠나는 일이 쉽지 않다.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이런 면에서 일단은 나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것이 안온한 감상이든, 치열한 싸움이든 간에 울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한 발을 내딛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보통의 엄마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개인의 감상적 자유의 구가이든 특정한 목적을 수반한 여행이든 간에 집 안 일을 잊기엔 한국이라는 사회는 엄마에겐 가혹한 곳이라는 걸 말이다.

작가가 길 위에서 추억 같은 또 다른 현실과 만나고 그 속에서 사람들 이야기 속으로, 그것도 안온한 삶이 있는 곳이 아닌, 상처 입은 영혼들의 삶 속으로 들어서면서 애써 눈을 감고 싶은 가난과 고통을 마주했을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돌아설 수 없는 연대감과 더불어 진정한 자유를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움을 갖게 한다.

이 땅의 구석구석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이 땅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덤덤한 시선으로 그러나 속 깊음으로, 보듬고 나아가려는 원칙이 책의 전권에 흐르고 있다.

<고향은 지금 디스 한 갑으로 산다>의 순창의 정영섭노인의 일제 때 징용이야기, 빨치산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보일러 기름 아끼는 마음, 그렇지만 아픈 허리로 손님상을 정성껏 차려내는 대목에선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의 종종걸음이 생각이 나서 울컥해지고 말았다.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굴곡 속에서 살아야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금은 황폐해진 농촌들녘을 구부러진 허리로 밭고랑을 훑으며, 그렇지만 따뜻한 정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작가는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첫 기착지, 가리봉>편에서는 가난에 못 이겨 서울 공장으로 올라간 우리네 언니, 오빠, 친구들을 이야기한다. 공장이나 버스차장으로 취직해 돈 벌어서 시골 부모님이랑 동생들에게 보내주던 고달프고 서러운 삶들.

언젠가 노동자로 들어간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 게 지루해서 하루해가 언제 질까 넋 놓고 기다리다가 도망치던 비겁한 내 자신을 기억하게 만든다. 비만 오면 퍼내도 퍼내도 차 오르는 부엌의 물과 퀘퀘한 곰팡내, 진한 화장실냄새가 싫어 지금도 휴가가면 깨끗한 방만 찾아다니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공선옥은 또 장애인 인권운동가 최옥란의 삶을 통해서 가난한 여성의 문제를 들춰내기도 한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평범한 아낙네들이 들놀이에서 맞본 해방감에서 느끼는 여성으로서의 동질감과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의 첨예한 고통 속에서 이혼 후 아들과 같이 살기 위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반환하고 명동성당에서 온몸으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활권 보장을 당당히 요구하다 간 그 분 앞에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작가혼자만의 상념일까.

노영란(동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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