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면 동호리 동계마을
마을로 향하는 길은 포장이 잘된 시골길이다. 예전엔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며 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동화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난 군도 6호선을 따라 남동-박산-조산마을을 지나면 배금산 서쪽 기슭에 대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을이 눈에 띈다.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진 후 마을진입로는 세수를 한듯 깨끗하다.
마을에 들어서니 익숙한 매운 고추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마을광장 앞 농산물건조장에서 한참 고추를 말리고 있는 중이다. 그옆 비닐하우스 안에선 한 아주머니가 고추를 다듬는다. "올 해는 비가 많이 와 고추농사가 예전만 못하제..."
동계마을 역시 쌀농사가 주업. 서양저수지의 물로 마을 앞들을 경작한다.
마을 주민 김경창(64)씨는 "예부터 농사 짓는 데는 천혜의 땅이제...저기 서양제에 물이 마른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타 마을처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장년층과 노년층 뿐이다.
논농사 외에도 단감과 포도, 배를 많이 재배한다. 마을앞들 일부와 월봉촌, 동호천 주변엔 이제 막 노란빛을 띄기 시작한 단감나무가 즐비하다.
80년대 초엔 이곳에 딸기 재배가 성했다고 한다. 거의 전호에서 많은 양의 딸기를 재배했다고 한다. 마을의 김진석(48) 이장은 "장성에서 쨈용 딸기를 맨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 우리 마을."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으로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재배를 하지 않는다.
동계(東溪)마을은 원동계와 월봉촌 2개 뜸으로 이루어졌다. 수련산 동남지맥인 매봉재와 배금산 기슭 해발 80~90m에 자리잡고 있다. 서북쪽에 서양마을, 서쪽에 삽치, 동남쪽에 조산마을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황룡면 맥호리와 접경하고 있다.
서북쪽에 있는 서양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월봉촌 앞에서 삽치 고랑물과 합수하여 동호천을 이루어 마을 앞들을 적시며 흐른다.
원래 반룡동이라 불렀고 영광군 외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장성군에 편입되었다. 1789년(정조 13년)에 간행된 <호구총수 designtimesp=28127>에는 반룡동,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designtimesp=28128>에는 동계리라 기록되어있다.
마을은 600여년전에 성촌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으며, 300여년전 광산김씨 수일당파 동리공(東里公) 조(照) 선생(1774~1853)이 마을에 입향해 동편계곡에서 초당을 짓고 살았다 하여 동계(東溪)라 칭하였다 한다.
일제때엔 원동계와 월봉촌을 합쳐 45호나 거주했으나 6.25를 거치고 70년대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25호만이 거주한다.
마을에 광산김씨가 가장 오래전에 입향한 만큼 주민 태반이 광산김씨다. 월봉촌 뒤 목우동에는 광산김씨 재실인 <목우재 designtimesp=28134>가 있으며, 동계마을 뒤편에는 울산김씨 재각이 있다. 마을 서쪽엔 상산김씨 재각이 있으나 이웃 서양리가 군부대 부지에 편입되자 수년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웃 조산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산 모퉁이엔 또 하나의 마을진입로가 나 있다. 이 길은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의 무성한 가지들 아래로 시원한 그늘이 펼쳐지는 산책로 이다. 주민들은 이곳 모정에서 쉬기도하고 산책을 즐긴다.
정자나무로 향하는 오솔길 옆엔 동굴이 있는 <굴바우 designtimesp=28140>가 있다. 이 동굴 입구에서 불을 지피면 황룡면 난산쟁이 마을뒤로 연기가 나온다고 한다. 굴바우 입구엔 그을음이 지금도 남아있다.
굴바우에서 동쪽으로 50여미터 떨어진 곳, 조산마을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모퉁이에는 <산태바우 designtimesp=28143>라 불리우는 큰 너럭바위가 있다. 산태타는(미끄럼 타는) 바위라 하여 산태바우란 한다. "어릴적 이 바우에서 미끄럼 깨나 탓제..." 이마을 김진석 이장의 말이다.
동계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짐대(솟대) 세우기 designtimesp=28146>라는 특이한 민속이 하나 있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암수 한쌍의 오리를 만들어 세우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이날 마을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긴다. 짐대는 썩어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놓아 둔다.
그러나 취재 당일 마을 어디에서도 짐대를 볼수가 없었다. 김진석 이장은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고 주민들의 참여도가 낮아 4~5년 전부터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썩은 짐대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안타깝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마을 앞들에 오리모양의 짐대 하나 서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계마을의 재미있는 지명들 designtimesp=28160>
동정이골: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
논역골: 동정이골 서쪽, 서양제 아래에 있는 골짜기
빈생이골: 논역골 위 서양제 위쪽에 있는 골짜기
구정부리: 월봉촌 뒤에 있는 산
아이고모탱이: 구정부리 위. 나뭇꾼이나 초동들이 오고가며 쉬었던 곳이라 하며 짐을 내려놓으면서 "아이고 죽겠네" 하는 말에서 생긴 이름이다.
도치끌: 마을 앞에 있는 논.
짐태끌: 마을 앞 신작로 밑에 있는 논. 옛날에 짐대를 세웠던 곳인 듯하다.
붕애배미: 마을 앞 사지에 있는 논. 붕어처럼 생겼다.
<자료제공:장성문화원 designtimesp=28172>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28175>
글/변중섭 사진/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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