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좋고 인심 넉넉한 富村
산수 좋고 인심 넉넉한 富村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8.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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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면 금호리 원금동마을















녹색이 출렁이는 들판 사이로 길은 끊어질듯 하면서 다시 이어진다. 황룡면에서 동화면을 잇는 국도를 달리다 장산사거리에서 통안리 방면으로 우회전. 길 양 옆으로 수려한 산세가 눈에 띈다. 필암리-홍길동생가-아곡리-호사마을을 차례로 지나면 축령산의 남쪽 지맥인 작은매봉(해발400m) 기슭 아늑한 골짜기에 원금동(金洞) 마을이 있다.

저 멀리 농약을 치고있는 농부의 모습이 푸르른 논의 녹색 바탕에 하얀색 한 점이 되어 박힌다. 머잖아 황금빛으로 변할 넓은 들을 바라보는 농부의 얼굴엔 구슬같은 땀방울이 맺힌다.

마을길을 걸으면 길옆 곳곳에 호박넝쿨이 우거지고 탐스런 호박이 나뒹구는 모습이 정겹다. 놓인 그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자기 것 아니면 탐을 내지 않는 순박하고 넉넉한 인심이 있는 마을.

"옛부터 산 좋고 물 맑고 인심이 좋은 곳이제" 마을을 소개한 박원병(67)씨의 말이다.
주민들간의 정이 돈독하고 결속이 잘되어 재경향우회원이 30여명이나 되며 매년 고향을 방문한다고 한다.

원금동(金洞) 마을은 내금동, 외금동, 탑정이, 그리고 새터로 이루어졌다. 마을북쪽의 작은매봉 남기슭에 내금동이 있고 작은매봉 서남지맥인 명마봉 남기슭에 외금동이 있으며, 외금동 서쪽 부산등(탑정이재) 너머엔 탑정이, 작은매봉 남지맥인 산정 서쪽엔 새터가 있다.

내금동 골짜기에 오르면 작은매봉 계곡의 물이 담기는 금호제가 있다. 금호제는 금동마을 농사를 위한 젖줄이다. 금호제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외금동과 새터를 가르며 흘러 남쪽에서 통안리 물과 합류하여 금호천을 이뤄 아곡리로 빠진다. 금호제 상류엔 장홍기씨의 농장과 수영장, 황토방 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장성천주교회 교우들의 수련회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성촌시기는 1594년 경으로 추정되며 마을이름을 금동이라 한데는 몇가지 유래가 있다. 마을 뒷산이 소가 누운 형국이라하여 <쇠꼴 designtimesp=10434>이라 불렀으나 <쇠골 designtimesp=10435>로 변해 <金洞 designtimesp=10436>이라 표기하였다고 하고, 내금동에 도요지가 있었고 이곳에서 사기그릇을 굽는 철판이 나와 <철점 designtimesp=10437>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철점 designtimesp=10438>에서 유래되어 <金洞 designtimesp=10439>이라는 설이 있다. 또 땅이 비옥해 농작물이 풍부하고 부유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쇠금(金)자는 부(富)를 상징한다. 그래서 <金洞 designtimesp=10440>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조 정조 13년(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람 designtimesp=10443>에 "금동"이 나오고,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designtimesp=10444>에는 "금동리"가 기록되었다.

이 마을엔 유독 한지를 생산하는 "지방(紙房)"이 많았다. 한지는 물이 깨끗하고 차가워야 질이 좋다고 한다. 작은매봉과 명마봉 기슭에서 흐르는 물은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한지를 만들기에는 더없이 좋은 물이다. 그래서 일제 때는 마을에 한지공장이 5곳 이나 되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지와 장판은 품질이 최상이었다. 남쪽은 물론이고 멀리 황해도 평양까지 한지를 가져다 팔았다고 한다.

이젠 그 많던 지방들은 모두 없어졌지만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를 찧었던 커다란 돌(닥독)이 개울가에 남아있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마을엔 많은 한지공장과 더불어 유동인구도 많았고 또 부자들이 많았다. 부자들이 많고 교육열이 높아 해방전만 해도 마을에 대학생이 5~6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세를 짐작할만 하다.
한때 83호에 주민이 400여명이나 되었으나 6.25 당시 마을의 전 가옥이 불에 타 지금은 34호만이 거주한다.
가옥들은 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기와와 슬레이트 지붕이고 벽돌 담장과 시멘트 길이지만 마을의 형세는 아직 50~60년대의 농촌마을의 모습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금호제의 물로 마을앞들(평전논)과 새터, 탑정이들을 경작하는 수도작을 주업으로 삼지만 산 비탈과 능선에 사과나무, 감나무를 많이 심어 과수농사도 한 몫을 한다.

이 마을도 여느 마을처럼 영농을 하는 연령층은 주로 장년층이다. 박원병씨는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노인들 뿐이제... 기계화 덕분에 이렇게나마 농사를 짓제"라고 말한다.
마을엔 장년층이 많고 90살 이상으로 장수하는 사람도 많다. 올해로 102살(김옥순)과 100살(남OO) 드신 두 할머니가 계시니 장수마을인 셈.

금동마을은 또한 충의와 청렴이 깃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말 의병활동을 했던 백효인 선생이 이마을 출신이다. 백효인 선생은 한말 을사조약 체결후 국망의 상황이 가시화 되자, 이웃 아곡리 하남마을 출생인 성재 기삼연 선생이 결성한 의병부대 <호남창의회맹소 designtimesp=10460>의 총독을 맡아 의병항쟁의 기세를 크게 떨쳤다.
선생은 후에 고향인 이곳에서 일경에 붙잡혀 마을 당산나무에 매달려 3일간이나 매를 맞았다고 한다. 선생이 죽은 줄 알고 가족들이 초상을 준비하는데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주민들은 "백선달"이라 부르며 탑정이에 묘와 비가 있다.

또 이 마을 출신으로 광주교도소 의무과장을 지냈던 김규섭씨는 1980년 정부로부터 "청백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금동의 숲속엔 한말 이곳에서 서당 훈장을 지낸 서한림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한 바위가 놓여있다. 무성한 칡넝쿨이 바위에 새겨진 글을 가리고 있다.

탑정이는 그곳에 <보림사 designtimesp=10468>란 절이 있었고 5층석탑이 있었다고 하여 탑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마을광장엔 두개의 정자와 정자나무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백효인 선생이 고초를 당했던 곳이다. 정자 옆 <원금동 문화생활관 designtimesp=10472>은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곳으로 책과 체력단련 장비 등이 있어 여타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시설이다.

마을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을회관 겸 노인정 건물 옥상에 놓여있는 철재 종이 인상적이다. 일제 때 그 자리엔 긴 사다리가 있는 종탑이 있었다고 한다. 6.25때 소실된 것을 96년 장홍기씨와 장윤진 이장이 복원하였다. 장윤진(48) 이장은 "마을에 종이 있어야 마을이 잘된다는 말이 있지요"라고 말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사를 짓고, 현실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

많은 비가 쏟아져 원금동마을 한 복한판을 흐르는 개울에는 물 소리가 우렁차다.



<원금동마을의 재미있는 지명들 designtimesp=10483>

작은매봉 : 내금동 뒷산. 축령산의 남지맥. 작은매봉 북쪽 통안리 지역에 큰매봉이 있다.
명마봉 : 외금동 뒷산. 작은매봉의 남지맥.
분여동 : 내금동 뒤 작은매봉이 2개의 지맥으로 나뉘는 곳.
무석골 : 내금동 왼쪽에 있는 골짜기. 호랑이가 많이 살아 무섭기 때문에 무석골이라 햇다 한다.
한대미 : 내금동 뒤에 있는 골짜기.
떡박골 : 내금동 뒤에 있는 골짜기. 떡바우가 있다.
가마등 : 외금동 앞에 있는 언덕. 소의 가마솥이다.
쇠골재 : 외금동 뒤에서 내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배나무재 : 엄산과 어등산(초지마을 뒷산) 사이에 있는 고개.
종댓거리 : 외금동 앞 사거리. 일제 때 진흥회에서 종을 세움.
솔모랭이 : 외금동의 서쪽.
태거리바우 : 내금동에 있는 바위. 호랑이가 턱걸이를 했다고 한다.
자래바우 : 마을 앞 금호천에 있는 바위. 자라처럼 생겼다.
달바우 : 산정에 있는 바위. 정월 보름이면 이곳에서 망월을 했다.
요강논 : 마을 앞에 있는 논. 요강과 바꾸었다고 해서 요강논이라 부른다.
고라실논 : 마을 앞에 있는 논.
웃시암 : 외금동에 있는 샘.



<자료제공:장성문화원 designtimesp=10506>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10508>

글/변중섭 사진/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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