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영화 한편
추억속의 영화 한편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9.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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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요즈음 사랑을 이야기할 때 플라토닉이나 자신을 헌신하면서 그 사랑을 지켜내는 것 따위를 강조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남녀간에 관계는 어차피 섹스대상을 물색해 들어가는 것이다라는 파편화된 인식에의 도달은 어찌보면 고도의 추상화된 개념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다면적이고 본질적 검증을 끝낸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사랑은 종족번식을 위한 암컷과 수컷의 행위였다.

사랑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그 복잡하고 애매모호하고 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던 그 이상한 감정이 단박에 정리되어버리기 까지 인간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미로를 헤메었던가?

그 답을 얻은지 이제 고작 2~3백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사랑이라는 개념의 총체성에 접근하기도 전에 그것에 질려버렸다. 헌신을 바탕으로한 품격있는 정신적 사랑은 어쩌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하여 인간은 도덕교과서, 신문지상, 철학서적에서만 사랑이라는 개념에 충실해 왔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인간본성인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원시공동체 수준의 남녀관계로 속은 물론 겉까지 회귀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은 섹스야!

사실 원시시대에 혹은 문명이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지 못했던 시기에 지금처럼 사랑의 대상을 고르는데 있어, 연령을 따지고 친인척 관계를 따지고, 사회적 위치를 따지고 그랬을리 없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상이 맘에 들면 연령이 문제고 친인척이고가 문제였겠는가?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짐승에 다를바 없었겠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되면서 부터 점차 우리 인간은 종족의 보존을 위한 사랑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따지게 되었다.

물론 사랑에도 사회의 발전 수준과 전통과 문화와 생활습관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나타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사회의 생산력 수준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짐승적 본능은 절제되고 억압되어 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이러한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했다고 믿는 지금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인간다운 사랑의 도리 규칙, 이런 것들에 진절머리를 낸다.

그래서 문밖에만 나서면 끊임없이 섹스의 대상을 물색하기에 여념이 없다. 틈만있으면 섹스를 모색한다.

누가 나에게 말했듯이 난잡한 섹스문화가 주를 이루었던 원시사회에서 한단계 발전해 절제와 정신적 사랑으로 수준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본능적 욕망에 충실한 섹스의 시대로 이렇게 인간의 성문화가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른바 변증법적 발전경로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무의식적인 경로속에서 스스로 만족감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허망함만 쌓여갈 뿐이다.

이 시대 인간들은 할 수만 있다면 날마다 새로운 섹스의 대상을 찾을 마음의 준비가 튼튼히 되어있다.

바야흐로 고도로 발전된 추상명사 사랑은, 정신적인 측면이 그토록 강조되었던 사랑이라는 개념은, 이제 극도로 단순화 되면서 입, 눈같은 말초신경적인 감각으로만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사랑은 더이상 없다.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는 사랑에 있어서 인간다움을 요구한다. 물론 거기에는 남녀중 어느 일방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 조차도 둘의 너무도 아름답고 깊은 사랑속에서 불을 밝히기 위한 에너지로 승화될 뿐이다.

장예모가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을 좇아 떠나는 길은 곧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사랑은 음흉한 눈동자나 가벼운 주둥이와 같은 말초감각기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장예모 감독은 말한다.

갈수록 악독해져, 이제 눈물마져 말라버린 나, 그런 나에게 장예모의 "집으로 가는 길"은 다시 눈물샘을 만들어 준다.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에 외쳤던 자유! 라는 함성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길"은 나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영화였다.

도대체 나는 뭐란 말인가? 눈물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부터 솟구쳐 올라온다. 가슴 속은 일렁이는 파도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아, 장예모 감독!

비디오테입을 집어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웬 흑백화면? 이 사람이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 지껄일라고 하나?라는 둥의 생각을 하면서 나는 머리맡에 놓인 베게를 끌어당겨 편하게 누워버렸다. 흑백화면은 쉼없이 흐른다.

도시에 나가있는 아들이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다. 길고 깊은 산골짜기의 눈길을 따라. 눈덮인 산골은 언제나 적막하고 아름답고 약간의 쓸쓸함을 준다. 그리고 저 어디메서 그냥 콱 멈춰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 그 상태 그대로.....라는 간절한 소망이 치솟는다. 나는 눈덮인 산야를 볼때면 항상 그런 상념에 젖는다.

어머니는 40년 동안 아버지가 일해온 학교 교실에 앉아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다. 아버지가 오래되고 낡고 비좁은 학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다 너무도 매서운 날씨 때문에 노구가 병들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부터 어머니는 차디찬 교실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고 촌장은 아들에게 말한다.

"너의 어머니가 도시 병원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걸어서 모셔오게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촌장은 아버지의 시신을 차로 모셔오게 해야한다고 아들에게 권고한다.

어머니는 왜 아버지를 걸어서 모셔오게 해야한다고 고집하는 걸까?

이때부터 아들의 머리를 통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40년 전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40년 전의 회상은 칼라화면이다.

도시청년이 어느 시골오지의 선생으로 부임한다. 그곳에는 학교건물조차 없었다. 마을 처녀였던 어머니는 부임해 오는 선생님께 처음본 순간부터 반해버렸다.

학교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총각선생인 아버지의 주위를 배회한다. 집집마다 학교를 짓는 마을 사람들의 점심을 해나른다. 처녀인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신이 지은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라며 음식을 만들어 갖다 놓는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드디어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드디어 어느날 어머니는 손수 지은 밥을 아버지에게 먹일 기회를 갖는다. 선생님의 식사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지어드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님이지만 외동딸의 총각선생에 대한 사랑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선생에게 결혼은 했느냐 약혼자는 있느냐 묻는다. 없다는 말에 처녀인 어머니가 빙그레 미소짓는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처녀인 어머니의 눈길은 밥을 먹고 있는 아버지에게로만 향한다.

그 점심을 먹으러 오는 날 처녀인 어머니는 빨강색 옷을 입고 부억문에 기대어 아버지가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문앞에 나타나자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찬다. 그 빨간색 옷과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골소녀(처녀)의 미소는 아버지의 가슴을 녹여버렸다.

어머니는 자신이 만든 음식이 담겨있을 그릇을 보여준다. 이제는 이 그릇에 담겨있는 음식만 찾아서 드세요. 라고 무언으로 말하면서....

아버지는 그 시골에 눌러앉아 40년의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아니 결혼생활 내내 그날 자신을 맞이했던 그 어머니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평생 동안 간직하고 살았다.

이들이 이렇듯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는 주 배경은 학교앞에 있는 우물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그 우물에거 어머니는 물을 길어 온다. 아버지의 모습을 먼 발치로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첫날 반해버린 아버지의 학생 가르치는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날 그러니까 점심을 먹으러 어머니 집으로 아버지가 왔던 그날 오후 아버지는 급히 도시로 떠날 일이 생겨버렸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도 어머니의 집에서 먹기로 약속을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만두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집에 오지 못하고 떠난다. 아버지를 실은 마차가 동네 입구를 벗어나 산길을 달린다. 구릉과 언덕을 사이에 둔 그 길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사랑의 배경이다. 아니 사랑의 상징이다.

어머니는 만두를 그릇에 담아 보자기에 싸들고 아버지가 탄 마차를 뒤쫓는다. 아무리 달려도 마차는 저 앞에 있다. 산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어도 마차는 저 멀리에 있다.

달리던 어머니가 넘어진다. 그릇은 깨져버렸고, 만두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머니는 서럽게 운다 울고 또 운다. 그러다가 깨진 그릇과 만두를 주워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선물로 주었던 머리핀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처녀는 몇날 며칠을 핀을 찾아 헤멘다. 머리핀은 다행히 집 부근에서 발견한다. 어머니에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는 이런 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다. 할머니는 깨진 그릇을 그릇쟁이를 불러 수리한다. 그릇을 산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서... 그렇지 않으면 선생은 자기 딸의 마음이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시골처녀는 떠나간 연인으로 인해 병이 깊어간다. 의사는 병의 원인이 몸에 있지 않음을 이야기해 준다.

겨울이 되었다. 아버지는 겨울 12월 27일에 오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 그날 매서운 눈보라가 쳤다.산골은 눈으로 뒤덮였고 바람이 거셌다. 어머니는 빨간 옷을 입고 하루종일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 길목에서 그리고 밤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졌고, 그뒤 오랬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니는 앓아누워 있으면서도 아버지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환청을 듣는다. 학교로 달려간다. 학교는 텅비어 있고 찢어진 문풍지만 바람에 휘날린다. 어머니는 절망한다. 그리고 집에서 종이를 가져와 여기저기 뜯어져 나간 교실의 종이문을 새로 바른다. 거기에 예쁜 빨간 꽃무늬도 붙인다.

열려진 학교문 때문에 동네 촌장은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그 동네에서 신기하기만한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촌장은 앓아 누워있는 동네 처녀를 위해 도시의 총각선생에게 연락한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날 사경을 헤멜 정도로 앓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온 줄도 몰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회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그렇게 그 둘은 또 몇년을 헤어져 있어야 했다.

4년 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그 뒤 다시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늙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입힐 수의를 짓고 있다. 동네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베틀을 손질하여 손수 아버지에게 입혀 보내드릴 수의를 짓고 있다. 아들은 말린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까지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아들은 이해한다. 왜 어머니가 그 길로 아버지를 걸어서 모셔와야 한다고 고집하는 지를 ... 왜 손수지은 수의를 입혀드리고 싶어하는지를...

이제 칼라 화면은 다시 흑백으로 바뀐다.

눈보라가 치는 날 아버지는 처음 그 동네에 들어오던 그 길로 어머니와 함께 관에 누워 걸어들어 온다. 꼭 한번 그 길을 아버지와 같이 걸어보고 싶었던 어머니.

이 영화에서 칼라와 흑백이 암시하는 것은 어머니의 삶이다. 어머니의 삶은 오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지난 40년이다. 그 앞도 그 뒤도 모두 흑백이다.

사랑도 명예도 권위도 우정도 동기간의 정도 한푼의 돈으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에 장예모 감독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살을 에인다. 북받치는 감동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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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해 인터넷 신문 뉴스통과 오마이 뉴스 등에 실린 필자의 영화평입니다.

<김기성 비상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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